이현우는 금요일 야근에 주말까지 출근하며, 월요일부터 시행되는 일정을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업무계획 수립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는 바로 [실행력]이다. 계획수립에 따른 목표달성도는 결국 실무자의 실행능력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계획을 수립하는 부서와 실행부서가 같다면 사실 문제될 일은 별로 없다. 자신들의 역량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행가능한 합리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획부서와 실행부서가 다를 때이다. 계획부서는 무조건 그럴듯한 계획을 수립해 상부에 보고한다. 즉 실행부서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계획을 수립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 경우 실행부서는 죽어난다.
또한 실행부서가 뺑이쳐서 목표를 달성하면, 그 공은 온전히 계획부서가 실적을 먹는다. 이현우 대리가 빡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인이 밤새워 잔업을 해도 결국 웃는 자는 은설 대리다.
“후 씨발....”
금토일 3일을 온전히 뒤치다꺼리 하느라 낭비해 버린 이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은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이 당해보니 분노로 머리가 팽팽 돈다.
윗대가리들이 자신들의 실적으로 써먹기 좋은 그럴듯한 계획을 수립하고, 슬쩍 타부서로 던져버린다. 물론 관리자들은 이미 구워삶아 놓았기 때문에 업무 떠넘기기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은설은 착실하게 윗선에 눈도장을 찍고 있었다.
실무에 관심 없는 관리자들이야 실행은 누가하던 실적이나 외부에 보도자료 내기 좋은 기획을 착착 가져오는 은설이 이뻐보일터.
예전에는 그냥 똥밟았다 치고 넘어갈 이현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자신에게는 업무시스템 관리자 권한이 있으니까.
“내가 저년을 그냥 두면 열 받아서 암으로 뒈질 거야.”
스마트폰으로 업무시스템을 실행 시킨 현우는 [관리자] 권한에서 은설을 검색한다.
[사용자 : 은설]
[나이 : 28] [키 :168] [체중 : 54]
[체력 : 7/10] [매력 : 7(+3)/10] [성욕 : 5/10] [멘탈 : 9/10]
[만족도 : 0/10] [호감도 : 잠금]
[심리 메시지]
회사 내에서 승진하고자 하는 [욕구]
사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열망]
남직원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갈망]
“하! 이년봐라.”
현우는 은설의 상태 메세지를 보고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아주 쌉관종이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싶고, 이성에게 매력적인 여성이며, 타인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싶은 족속. 관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리 메시지는 적나라하게 은설의 그러한 성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SNS 접속해 보니 꾸준히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딱 붙는 필라테스복을 입고 기구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진. 아름다운 야경이 보이는 루프탑 수영장에서 몸매를 과시하며 찍은 사진. 딱 붙는 레깅스와 크롭티를 입고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친구들과 함께 찍은 평범한 사진도 간혹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항상 자신위주의 구도였다.
수천개의 좋아요와 팔로우, 꾸준히 업데이트 되는 사진. SNS에서도 관심받고 싶어하는 은설의 관종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관종에게 가장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 바로 무관심이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욱 견디기 힘들터. 그래서 현우는 자신이 관리자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SNS에서는 몰라도 회사에서 완전히 매장시켜주마.”
자신을 과시하고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다지만 남을 밟고 올라가는 꼬라지가 참 맘에 들지 않는 현우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은설을 매장시킬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 * *
은설은 입사때부터 팀장, 본부장 할 것 없이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여기에는 뛰어난 업무능력도 한몫했지만 관리자급에 입맛에 맞는 실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획력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쌍커풀 수술로 콤플렉스였던 얼굴마저 포텐이 터지며, 팀장들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여직원과는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댄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잘 관리한 몸매를 무기로 이성에게 어필하고, 상사에게 인정받는 게 훨씬 그녀에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직원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즐기기까지 하는 은설이었다.
‘노력도 안한 것들이 질투는. 풋!’
꾸준한 식단관리와 필라테스로 다져진 슬림하고 탄력있는 몸매. 23인치에 가느다란 허리와 35인치의 풍만한 골반라인. 쭉 뻗은 긴 다리는 그녀의 자랑거리였다. 그녀가 자주 입는 딱 붙는 하이웨스트 스커트는 이러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출근시간, 로비를 울리는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리면 남직원의 시선은 모두 자신을 향한다. 음흉한 시선도 자주 보이지만 오히려 이런 관심어린 시선이 그녀를 짜릿짜릿하게 만든다.
물론 외모뿐만이 아니다. 외모만 반반하지라는 말은 그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에 많은 노력을 하였고, 업무능력으로도 상부에 인정받는 그야말로 문무겸비의 완벽한 커리어 우먼. 바로 은설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무언가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뭐야 이 분위기.’
최근에는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눈까지 쌍수로 완벽하게 극복하면서 그녀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런데 뭐냐고 이 분위기.’
그녀가 지나가든 말든 관심 없는 남직원들. 심지어 눈이 마주쳐도 마치 청소아주머니를 본 듯 시근퉁하기만 하다. 며칠전만해도 자신이 지나가기만 해도 “야 은설온다.” “몸매 오우야” 등 자신을 향해 수군수군 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뭔가 이상해.”
그러나 더 큰 놀라움은 사무실에 도착해서였다.
“은대리 잠깐만”
홍보팀장이 자신을 부른다.
“네에~ 팀장님”
살짝 애교섞인 콧소리를 내며 팀장의 자리로 가는 그녀였다. 홍보팀장은 은설이 애교도 떨어가며 살갑게 구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팀장에게는 입맛에 맞는 실적도 분기별도 딱딱 먹여주며 신뢰와 좋은 평판을 쌓아왔다.
“은대리 저번 2분기 실적보고서 다시 작성해와요.”
“네? 팀장님 분명 저번에는 분명 완벽하다고 하셨는....”
“아 그때는 전부 검토하기 전이고. 자 여기 페이지 봐요. 애매모호하게 표현한 부분은 좀 더 직관적으로 바꾸시고, 뒷 페이지에 도표 역시 가시성이 떨어지는 거 안보여요?”
“군소리말고 다시 작성해요!”
“어....어...네 팀장님.”
은설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보고서 지적을 받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갑자기 왜저래 팀장.’
이 때까지만 해도 은설은 팀장이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 삘릴릴리 삘릴릴리 -
은설이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기가 울려댄다.
“저번주에 홍보팀에서 요청하신 업무협조는 내부적으로 검토결과 저희부서에서 진행할 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아니 왜 이런 업무까지 우리가 해야 하냐고요.”
“계획수립 부서가 당연히 실행해야죠. 무슨 계획짜는 부서 따로 있고 수행부서 따로 있어요?”
“은대리 이건 아니지. 팀원들한테 그런 업무협조는 좀 자제하게.”
봇물 터지듯 업무협조를 요청했던 모든 부서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나름 4년차 직장인으로 산전수전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당황스러웠던 날이 있었던가?
“하아... 뭐야 다들 이제 와서 왜 이래. 분명 다 구워삶아 놓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팀장도 이상하고. 본부장님께 가봐야겠어.’
- 또각 또각 -
은설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평소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던 본부장실로 향했다.
“오케이 오늘도 완벽해.”
화장실에서 화장과 옷매무새를 정돈한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울속에는 딱 붙는 하이웨스트 스커트와 높은 하이힐이 그녀의 몸매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 똑똑 -
“네 들어와요.”
“본부장앙님~”
은설은 또래 남직원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애교를 장착하며 본부장실로 들어간다. 자리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성이 앉아있었다.
“무슨일인가요? 은대리.”
본부장의 질문에 은설은 오늘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쌓였던 설움이 폭발했는지 비협조적인 팀들에 대한 불만을 본부장께 털어놓는다.
“아 잠깐잠깐 은대리. 이야기는 알겠는데 그쪽부서에서 협조가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부서들은 업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 주관부서는 홍보팀일텐데? 담당자는 은대리 본인이고.”
본부장은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은설의 말을 끊는다.
“네? 하...하지만 본부장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
“업무협조를 받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란 소리였지. 그건 은대리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용건이 그거라면 이만 나가봐요. 오늘 처리해야 할 사안이 많으니.”
- 쾅 -
본부장의 축객령에 은설은 입술을 꽈악 깨물며 본부장실에서 나왔다.
‘작년에 내가 실적 챙겨준 게 얼만데. 이제 와서 이러기야?’
믿었던 본부장까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은설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침울하게 홍보팀 자리로 돌아오자 그녀의 책상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각 부서로 던졌던 업무가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온 결과였다. 그리고 이 업무들은 모두 자신이 벌여놓은 것들이었다.
부서원들을 한명 한명 스캔해 보지만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말하던 남직원들이 오늘은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다.
‘하아...뭐야 진짜’
체념한 은설은 조용히 자신이 여기저기 부서로 싸질러 놓은 업무를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주말출근을 할 정도였으니 그 업무량은 적지 않았다. 퇴근시간을 훌쩍 지나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밤새 그녀의 자리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 * *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큭큭큭.”
오늘 은설이 당한 모든 일의 원흉인 현우는 탄산음료를 원샷한 듯한 짜릿함을 맛보고 있었다.
은설에 대한 [호감] - 감소 활성화
은설에 대한 [반감] - 증폭 활성화
업무시스템으로 현우가 적용시킨 내용이었다. 은설이 회사 내에서는 나름 네임드(?)이다 보니 홍보팀장부터 홍보팀원들, 타부서 팀장, 직원들, 본부장까지 그녀에 대한 호감 또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싸가지 없기로 유명했는데 윗대가리들한테는 엄청 잘보였구만?”
사실 놀라웠던 건 관리자급 임원들이 그녀에게 가지는 호감이었다. 입맛에 맞는 기획안을 알아서 딱딱 가져다 바치니 그럴 수밖에. 물론 쌍수로 더해진 매력적인 얼굴과 환상적인 몸매도 한몫 했으리라.
은설을 매장시켜버리는 이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직원들과 다르게 남직원들의 감정조작에는 통솔수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남정네들에게 관심이 없던 현우였지만 이병주의 감정을 조작했을 때 별도로 통솔수치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은설에게 호감이든 반감이든 감정이 있는 모든 남직원들의 감정을 조작했다. 호감은 감소시키고, 반감은 증폭시키는 것으로 말이다.
[사용자 이현우]
[등급 : 초급 관리자]
[나이 : 29] [키 :177] [체중 : 68]
[체력 : 4/10] [매력 : 3/10] [정력 : 7/10] [통솔 : 3/10]
[잔여포인트 : 0]
그리고 잔여포인트를 사용해 통솔 수치를 올려 [여직원] 항목에 은설을 추가시켰다. 그래서 [여직원] 항목은 아래와 같다.
[여직원]
- 김지영
- 서진아
- 은설
[사용자 : 은설]
[나이 : 28] [키 :168] [체중 : 54]
[체력 : 7/10] [매력 : 7(+3)/10] [성욕 : 5/10] [멘탈 : 9/10]
[만족도 : 0/10] [호감도 : 잠금]
[심리 메시지]
회사 내에서 승진하고자 하는 [욕구]
사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열망] - 증폭 활성화!
남직원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갈망] - 증폭 활성화!
[초급 관리자]로 승급하면서 [여직원]에게 2가지 감정을 동시에 조작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현우는 은설의 관종끼를 더욱 증폭시키기로 했다. 사내에서 관심받고 매력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은설의 감정은 더욱 끓어오르리라.
남직원들의 냉담한 태도와 반대로 그녀는 더욱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큭큭큭. 볼만하겠어. 발버둥치는 모습이. 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