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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





- 삐비비빅 삐비비빅



- 촤아악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 현우는 시원하게 창문의 커튼을 열어 재낀다. 뿌연 미세먼지도 없는 푸른 하늘이 창문 뒤로 펼쳐진다.



“아 회사 가기 좋은 날이다.”



남의 돈 받고 일하는데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지루한 회사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현우는 출근이 기다려진다.



“흠흠흠~”



일찍 일어난 덕분인지 여유 있게 준비하고도 출근 20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한 현우. 뒤에 도착한 팀원들과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이대리 무슨 좋은 일 있어? 얼굴이 훤하네.”



“안녕하세요. 김과장님 하하 제가 뭐 좋을 일이 있나요 항상 똑같죠.”



업무는 더럽게 안하면서 힘들다고 항상 징징대는 아줌마가 괜히 친한 척을 하니 현우는 괜시리 짜증이 난다. 김태연 과장은 팀장도 지쳐 포기한 폐급 오브 폐급이다. 덕분에 이 아줌마가 못한다고 하는 업무가 상당부분 그에게로 몰렸다.



‘후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 이대리 잠깐만요.”



“넵 팀장님”



“이번 주 업무계획이랑 실적 정리해서 보고하고, 본부별 경영위원회 안건도 취합해서 제출해요.”



팀장은 출근하자마자 현우에게 귀찮은 업무를 잔뜩 지시한다. 일 안하는 김태연 과장과 얼굴만 보였다 하면 업무지시 하는 팀장. 출근 전에 상쾌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싹 날아가는 현우였다.



‘이 개새끼들을 진짜... 어어? 맞다. 그래! 업무시스템!’



“하하하....”



자신에게 업무시스템이 있는데 왜 지금껏 부당한 대우를 꾹꾹 참고 있었는지 현우는 그 사실을 깨닫자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관리자 권한으로 나는 이제 업무에서는 안녕이다. 한 마리 꿀벌처럼 꿀통에 빠져보자.’



스마트폰을 꺼내 든 현우는 이내 업무시스템을 실행시킨다.



[관리자] 항목에서 경영지원팀장을 선택한다.



[경영지원팀장]

[사용자 : 박병철]



[심리 메시지]

팀원 이현우에 대한 [미안함]



‘새끼가...그래도 양심은 쪼금 있었네?’



평소 팀 내 업무의 대부분을 이현우에게 던진 박팀장은 그래도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나보다. 생각해보면 현우 외에는 정상적이 팀원이 없는 상황에서 팀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에이 그래도 이건 아니지.’



현우는



팀원 이현우에 대한 [미안함] - 증폭 활성화 (New!)



자신에 대해 느끼는 팀장의 [미안함]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그래요? 무슨 일이지?”



“잠시 회의실로...”



팀장을 회의실로 불러 독대한다.



“팀장님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십니다.”



“갑자기 왜 그래 이대리?”



현우의 급발진에 팀장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 탁



“이거 보세요. 팀 업무분장 현황입니다. 팀장님도 잘 아시는 것처럼 이차장님. 김과장님 두 분은 지금 담당한 업무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저는 저분들에 몇 배구요.”



“아니... 이대리 그건 김과장은 애가 둘이잖아. 이차장은 또...”



“아니 팀장님 무슨 회사에서 가정사 따지면서 업무를 합니까? 저분들은 그럼 돈 안 받습니까? 저보다 연봉도 더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도 며칠도 아니고 벌써 1년째 혼자 업무독박을 쓰고 있습니다. 좀 이해해 주십죠.”



“아니 잘하다가 갑자기 왜 이래 이대리?”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팀장님. 업무 분장 다시 안 해주시면 저 이제 업무 안합니다.”



“허허허....아니 이 친구가 오늘 갑자기 왜 그런거야”



이현우의 강경한 태도에 팀장은 어쩔줄 몰라한다. 평소 팀장의 성격으로 봐서는 이렇게 들이박는 그에게 버럭 화를 냈겠지만 업무시스템으로 [미안함]을 증폭시켜서 인지 시종일관 현우에게 쩔쩔 메는 모습이다.



“그럼 전 할말 다 했습니다.”



- 쾅



“와우 속이 다 시원하네.”



평소 꼭 해보고 싶었던 빡쳐서 문 쾅 닫기. 이걸 팀장한테 해보네. 현우는 그동안 마음 속 깊이 꾹 참아두었던 말을 모두 쏟아내니 상쾌한 기분이다. 그런 현우와 다르게 한참을 회의실에서 고심하던 팀장은 이내 팀원들을 모두 부른다.



“자 다들 앉아 봐요.”



그리고 현우에게 몰렸던 업무를 하나하나 팀원들에게 재분배한다.



“아니아니...팀장님이임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요 좀 당황스럽습니다. 팀장님.”



당장에 업무를 넘겨받은 이차장과 김과장이 팀장에게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군말 말고 지시한 대로 해당업무 이대리한테 다 인계받아요. 지금까지 이대리가 두 사람 때문에 고생한 거 조금만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미안하게 생각해야지. 쯧쯧쯧....”



“...”



“...”



팀장의 일갈에 두 사람은 말없이 회의 테이블만 노려본다.



- 턱



“하하하... 저도 갑작스럽네요. 아무튼 팀장님이 지시하셔서... 여기 업무관련철입니다.”



팀장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인수인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현우는 곧바로 두 사람의 책상에 업무관련 파일철을 잔뜩 내려놓는다. 이차장과 김과장 자리로 관련서류를 넘기자 현우의 책상 한 쪽이 휑하니 빈다.



‘평소 탱자탱자 놀았으니 오늘부터 야근 좀 하겠네.’



두 사람이 야근하는 모습을 상상도 못해봤는데 이것이 업무시스템의 위엄인가.



‘그건 그렇고’



생각해 보니 업무시스템에서 남직원의 심리상태를 컨트롤 하는 것보다 여직원을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남직원의 경우 아무런 제약 없이 [심리 메시지]의 감정을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직원은 심리상태 조작을 하기위해서 해당 여직원을 업무시스템의 항목 중 하나인 [여직원] 탭에 추가시켜야 한다. 그리고 [여직원] 탭에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통솔]이 필요하다.



[여직원]

- 김지영

- 서진아

- 은설



[사용자 이현우]

[등급 : 초급 관리자]

[나이 : 29] [키 :177] [체중 : 68]

[체력 : 4/10] [매력 : 3/10] [정력 : 7/10] [통솔 : 3/10]

[잔여포인트 : 2]

[잔여 근로계약서 : 20개]



현재 [여직원] 목록에는 맨 처음 퀘스트를 깨기 위해 등록한 평범녀 김지영과 베이글 유부녀 서진아, 쭉쭉빵빵 츤데레 은설 셋이 추가되어 있다. 물론 잔여포인트를 [통솔] 수치에 추가한다면 다른 여직원도 추가 할 수 있겠지만 확실히 남직원에 비해 큰 패널티라고 할 수 있다.



‘여직원을 회사에서 따먹으라던 [업무지시]와 통솔수치를 올려야만 조작 가능한 여직원. 업무시스템이 아니라 섹스시스템으로 명칭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퀘스트처럼 [업무지시]를 내리고 여직원을 따먹으면 관리자로 성장한다. 그 것이 시스템이 바라는 것인가?



‘그래 까짓것 섹스섹스맨이 되어주지 뭐.’



여자를 따먹으라는데 거부할 남자가 있을까? 손 안에 든 업무시스템을 맘껏 이용해 주겠다는 현우였다.



‘그건 그렇고 [근로계약서]가 꽤 많이 쌓였네?’



여직원의 [만족도] 최대수치가 될 때마다 하나씩 발생하는 [근로계약서].



[근로계약 항목입니다.]

[근로계약의 대상은 재직중인 직원입니다.]

[초급 관리자와 대상이 체결할 수 있는 근로계약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업무협조

- 을은 갑이 요구하는 모든 업무 관련 지시를 수행해야 한다.

금품제공

- 을은 갑에게 급여의 일부를 제공해야 한다.

사생활 보고

- 갑은 을에게 업무와 무관한 사생활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사적모임

- 갑은 을에게 업무와 무관한 사적모임을 요구할 수 있다.

???(잠금)

???(잠금)

???(잠금)



처음에 김지영에게 받은 [근로계약서]로 서진아에게 [사적모임] 근로계약을 맺었었다. 덕분에 한달에 2번이지만 쏠쏠하게 서진아를 모텔로 데려가 따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주종관계]인데 더 이상 쓸 일은 없겠지.’



사실 팀장에게 [업무협조] 근로계약을 맺은 뒤 업무를 좀 다른 팀원들에게 넘기려던 현우였지만 간단하게 [심리 메시지] 증폭으로 해결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근로계약서] 하나를 아꼈다.



‘흐음... 당장에 뭐 서진아나 은설에게 쓸 필요는 없어 보이고.’



[근로계약서]의 사용처를 고민하던 현우는



[근로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박명식은 관리자에게 매월 급여의 일부를 상납해야 합니다.]

[금품제공은 월급여의 5%입니다. 관리자 등급이 오를수록 비중이 증가합니다.]



자신의 부서 팀장과 [금품제공] 근로계약을 체결해 본다.



‘엥? 겨우 5퍼센트?’



- 띵



- 박명식님으로부터 250,5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현우의 통장으로 곧바로 이체가 됐다. 대략 25만원이니까 팀장의 월급은 500정도인가보다.



‘어어 이거...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되진 않겠지?’



현우가 고민할 여지도 주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하자마자 훅 입금되다니. 나중에 쇠고랑 차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현우는 힐끗 팀장을 쳐다본다.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중인 팀장.



‘통화중이라 직접 입금한건 아닌데...아 썅 몰라 이미 입금 된 거.’



직장인의 자존심은 건드려도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월급의 5퍼센트를 스틸한 현우는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지금껏 업무시스템이 준 기적을 믿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팀장 월급이 적네?’



팀장의 연봉이 6천밖에 안하나?



“아!”



세금 빼고 주는구나. 빌어먹을 헬조선. 뭐하나 해주는 것도 없이 세금만 존나게 땐다. 직장인이 아주 봉이지. 다시 계산해 보니 세금 제외하고 월 실수령금액이 500만원이라면 연봉은 대충 7200정도.



“휴우”



현우 자신도 나중에 받을 연봉인데. 그렇게 낮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한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했다. 현우는 팀장을 시작으로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팀장, 본부장에게 [금품제공] 계약을 체결했다.



[동일한 근로계약은 10개를 이상 체결 할 수 없습니다.]



“쉣”



한 30명 정도만 동원하면 연금복권 1등 당첨된 것 마냥 꼬박꼬박 돈이 들어왔을 텐데. 하지만 업무시스템은 현우의 그런 얄팍한 꼼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사용자 이현우]

[등급 : 초급 관리자]

[나이 : 29] [키 :177] [체중 : 68]

[체력 : 4/10] [매력 : 3/10] [정력 : 7/10] [통솔 : 3/10]

[잔여포인트 : 2]

[잔여 근로계약서 : 10개]

[월 추가급여 : 3,312,000원]



‘그래도 이정도면 미친거지.’



직급이 높은 순서대로 9명을 더 추가했더니 대충 삼백만원가량이 통장으로 이체되었다.



“오우 베이베 에아”



지금 현우 눈앞에 업무시스템 개발자가 있다면 발이라도 핥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관리자 권한으로 오늘 자신을 괴롭히던 업무의 대부분을 하는 일도 없이 노는 두 상사들에게 떠넘겼고,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에서 전문직 종사자급으로 연봉이 상승하는 두 가지 기적을 맛보았다.



“팀자아아아아앙님!”

“오늘 반차 좀 쓰겠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 사무실에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현우는 매우매우 당당히 팀장에게 반차를 제출한 뒤 회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 *



“호갱... 아니 고객님 그럼 이 차량으로 하시겠어요?”



반차를 쓰고 현우는 가까운 자동차 대리점을 방문했다. 29년 뚜벅이 인생을 오늘 마감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학자금 대출금 상환, 전세금 대출, 부모님 용돈까지 빠져나가면 사실 차량을 구매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매월 삼백정도씩 여유가 생길 터.



‘드디어 BMW(버스, 메트로, 워크)와 이별이다.’



“네 바로 출고 할 수 있는 게 정말 마음에 드네요.”



마침 자신이 원하던 모델이 전시차 할인 조건으로 재고가 있었다. 당장에 인수 할 수 있다는 딜러에 말에 현우는 그 자리에서 구매 계약서를 쓴다.



화이트 색상에 중형 SUV. 판매량이 항상 상위에 있는 인기 모델이기 때문에 중고로 팔 때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럼 3일 내에 출고 진행하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서비스가 있으신가요?”



“아 현금할인은 됐구요. 블랙박스도 적당한 거 넣어주세요. 대신 썬팅은 최고급으로 해주세요. 안에서는 잘 보이고 밖에서는 절얼대로 안 보이는. 딴 건 필요 없으니까 썬팅은 꼭 신경써주세요.”



“아 물론이죠 고갱님. 걱정 마세요.”



‘이젠 정말 흐흐흐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겠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현우는 매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