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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





[사용자 : 김혜리]

[나이 : 20] [키 :161] [체중 : 46]

[체력 : 9/10] [매력 : 8(+1)/10] [성욕 : 3/10] [멘탈 : 4(-4)/10]

[만족도 : 잠김] [호감도 : 잠김]



인턴생활에 대한 [설렘]

드라마 같은 로맨스에 대한 [기대] - 증폭 활성화

이현우에 대한 [호감] - 증폭 활성화



‘[집착]이 사라지면서 멘탈도 좀 회복했네.’



현우는 기다릴 것 없이 곧바로 [호감]을 증폭시킨다. 은설을 공략하면 느꼈지만 [호감]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은설에게 확인했듯 증폭까지 시켰다면 이미 게임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감] 갖는다면 이 [호감]을 무기로 관계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지금껏 김혜리가 그래왔을 터였다. 식사는 물론 고가의 명품 선물과 픽업서비스 등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들의 애정공세는 안 봐도 비디오다.



어장에 갇힌 물고기는 자신의 처지를 알지만 포기할 때 쯤 던져주는 떡밥에 다시 설레인다. 한 사람의 순수한 [호감]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을 독차지하는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는 [호감]을 무기로 그들을 지배한다.



‘슬픈 일이지.’



자신도 한때 호구 짓을 해봤던 현우는 그 안타까움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연애를 하지 않았던 이유. 누군가에게 관심과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남녀사이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 관심이 일방통행이라면 고통을 받는 것은 당사자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안달나고 속앓이하고 작은 관심에 설레일 사람은 바로 김혜리다.



* * *



‘뭐 이제 따먹는 건 일도 아닌데.’



그냥 먹는 건 뭔가 노잼이다.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없는 섹스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난 전생에 작가였음이 틀림없어.’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애정 없는 연애처럼 뭔가가 허한 듯 부족하다. 남자가 시각적인 자극에 가장 민감하다고는 하지만 현우에게는 꼴릿한 상황이 주는 맛도 일품이었다.



“흠...”





근무시간 내내 현우는 김혜리를 어떻게 요리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일전에 업무를 적당히 넘긴 탓에 뻘생각을 하며 의자를 뱅뱅 돌려대도 상당히 여유로운 상태다.



“이대리니임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아까부터 계속 옆자리의 현우를 주시하던 혜리는 어느새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있다.



“어? 그냥 이번주 업무리스트 체크?”

‘너 따먹을 플랜 구상 중.’



“피 거짓말. 요즘 한가해보이시던데요?”



“쉿... 무슨 소리. 내가 얼마나 바쁜사람인데 그렇게 한가해 보여?”

‘요즘 업무도 다 떠넘기고 개꿀이지.’



현우는 혜리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눈다. 속은 시커먼 여우라는 사실을 알지만 일단 외모는 발랄한 여대생이다. 그리고 현우는 예쁘고 심지어 어린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하는 남자가 있을까?



- 우우우웅



“저거 계속 울리는데 확인 안 해도 돼?”



“아...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때 저 약속이 취소 돼서 시간이 비는데...”



“그런데?”



“아니...참 이대리님은 눈치도 없어요?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밥 한번 살게요...”



-우우우웅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계속 혜리의 폰은 진동을 토해낸다. 현우가 슬쩍 화면을 확인해 보니



- 최현민 주임



김혜리를 냉정하게 밀어냈던 그가 이제는 애가 타는지 먼저 그녀에게 연락하는 모양이다.



[사용자 : 최현민] 주임

[심리 메시지]

담당 시스템 관리에 대한 [짜증] - 증폭 활성화

김혜리에 대한 [호감] - 증폭 활성화 (New!)



현우는 김혜리의 [호감]을 손에 넣은 후 최현민에게 증폭시켰던 [비호감]을 감소시켰다.



그러자 놀랍게도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최현민은 김혜리에 대한 [호감]을 다시 드러냈다. 시스템으로 그의 감정을 조작하기 전부터 이미 현민은 혜리에게 푹 빠져있는 상태였고, 다시 처음처럼 감정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 NTL 이건 못 참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현우는 현민의 [호감]을 다시 증폭시킨다. 혜리를 밀쳐냈던 최현민은 반대로 그녀에게 안달나기 시작할 것이다. 엇나간 큐피트의 화살. 현우 손아귀에 놓인 조연들.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였다.



“그래 퇴근하고 술 한잔 하자.”



“네에 좋아요~”



시원한 현우의 대답에 신이 났는지 혜리는 자리에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퇴근 후 현우와 혜리는 회사 근처 선술집으로 향한다.



“아니이... 그러니깐요,,, 대리님..”



한잔 두잔 사케를 주고받은 두 사람. 소주보다 도수가 낮다곤 하지만 현우가 템포를 빠르게 올린 탓인지 혜리는 살짝 취한 듯하다.



“응. 듣고 있어 말해.”



“제가... 그러니까요..”



사케 탓인지 그녀의 흰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화장 때문인지 얼굴은 흰 우윳빛을 띄고 있었다. 그 색의 대조가 묘하게 현우를 꼴리게 한다.



“저어... 저... 대리님 좋..좋아해요.”



“푸웁!”



‘이렇게 빨리 고백한다고?’



업무시스템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혜리는 현우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녀의 성격이 원래 이런 것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증폭 때문인지



‘아님 둘 다인가?’



커다란 눈와 오똑한 코. 잡티 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와 시스루 뱅 스타일의 앞머리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풋풋한 여대생의 상큼함이 느껴진다. 어딜 가더라도 외모로 과탑은 문제 없을 정도.



그런 김혜리가 고개를 푹 숙이곤 두 손을 연신 배배꼰다. 당돌하게 고백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조금은 부끄럽고 긴장되는 모양이다.



“...”



“대...대답은 안해주시나요?”



현우가 말없이 혜리를 응시하자 그녀는 초초했는지 대답을 재촉한다.



“나도 싫지 않아.”



“꺄악! 정말로요?”



“하지만.”



“...”



“혜리 너 최근까지 최주임한테 관심 있지 않았어? 회사에서 소문이 돌 던데?”



“아 그건..그건 다 끝난 일이에요.”



“왜? 최주임이 너한테 관심 없었어? 차인거야? 설마 차이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현우의 말에 혜리는 화가 났는지 두 주먹을 꽉 쥔다.



“아니에요! 그런건 절대 아니라구요. 그때는 관심이 있었지만... 다 끝난 일이에요, 지금은 이 대리님이라구요...”



“그래? 근데 아까 슬쩍 보니까 최주임이 계속 연락하던데? 확실히 정리한거 맞아?”



“네에...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 연락이 와요.”



“하아...”



“,,,”



현우의 깊은 한숨에 혜리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눈치를 본다. 혹시나 최현민 주임 때문에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면 어쩌지?



“그럼 이렇게 하자. 최현민 주임을 완전히 정리해. 사귀는 건 그 다음에 생각해보자.”



“전 이미 다 끝냈다구요... 그쪽에서 자꾸 일방적으로 그런건데...”



눈 뒤집혀서 최현민에게 들이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피해자인척 하는 김혜리가 우스웠지만 일단 현우는 앞으로의 빌드업을 위해 꾹 참고 그녀에게 조언한다.



“그럼 충격을 줘서 떼어 내야지. 일단...”



이어지는 현우의 말을 김혜리는 하나라도 놓칠까 집중해서 경청하기 시작한다.



* * *



- 깨똑



“그래. 니년이 그러면 그렇지.”



일과 연애 모두 풀리지 않아 답답했던 현민은 기다리던 혜리의 답장에 주먹을 불끈 쥔다.



“그 정도 튕겼으면 많이 했다. 대인배인 내가 쿨하게 용서해야지.”



현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혜리를 냉담하게 쳐냈던 행동이 떠올랐는지 그녀에게 약간에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가?’



지금도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분명 첫 만남부터 김혜리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자신이었다. 산삼보다 좋다는 스무살. 나이에 맞는 풋풋함과 잡티하나 없는 뽀얀 피부, 커다란 눈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비슷한 또래에 여우같은 여자들과 만나던 현민은 스무살 혜리가 주는 발랄함과 상큼한 외모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마음은 뜨거웠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현민은 천천히 혜리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평소 자신의 외모와 재력 덕분에 원하는 여자를 놓친 적 없는 그는 이번에도 그녀를 손에 넣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식어버린 현민의 마음.



‘아 진짜 내가 미쳤었지.’



떠나가는 기차는 돌아오는 법이 없지만 끈기 있는 노력으로 간신히 붙잡은 두 번째 기회. 현민은 다시는 김혜리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데이트룩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 부우우웅



거친 배기음이 고요한 주택가를 들썩이게 한다. 세차까지 마친 현민의 애마는 위풍당당하게 혜리의 집 앞에 도착한다.



- 또각또각



잠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던 현민은 주택가 골목을 울리는 구둣소리를 듣고 황급히 담배를 발로 지져 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출근할 때도 화장을 잘 하는 편이었지만 데이트라 그런가? 유독 신경을 쓴 혜리의 모습. 그녀의 그런 모습에 현민은 내심 안도한다.



맘도 없는 남자 앞에서 예쁘게 차려입는 여자는 없다. 그런 점에서 혜리의 화장과 옷차림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럼,,, 맛있는거 먹으로 갈까?”



“오늘... 최주임님 저한테 엄청 맛있는 거 사야하는 거 알죠??”



“하하하 말만 해. 진짜 원하는 건 다 사줄게. 기분 풀어줘.”



“그럼 빨리 가요. 저 배고파요.”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차에 타는 혜리. 그녀가 배고프다는 말에 현민은 엑셀 페달을 평소보다 강하게 밟는다.



- 달그락 달그락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큰맘 먹고 잡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비싼 가격에 걸 맞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정갈한 식기, 다채로운 음식들.



그러나 현민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 앞에 앉은 혜리의 기분이다.



“어때? 여기 메슐랭 가이드 별3개 받은 곳인데 항상 다섯 테이블 밖에 예약을 받지 않는 곳이야.”



“네. 맛있어요.”



“하하하... 다행이네...”



“근데 그걸로 끝이에요?”



찌릿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혜리. 본인은 나름 분위기를 잡으려는 모양이지만 그런 모습이 현민에 눈에는 귀엽게만 보인다.



“어... 음... 일단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니 연락 씹은거...”



“그리고요?”



“너한테 차갑게 대한 것도...”



집 앞까지 픽업에 좋은 레스토랑 에스코트,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까지. 평소 최현민을 잘 알던 친구가 보기라도 한다면 깜짝 놀랄 그의 모습이었다.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최현민이 여자 때문에 이 정도로 설설 기다니. 그러나 현민은 그 정도로 절박하게 혜리를 원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현우가 업무시스템으로 증폭시킨 [호감]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 최 주임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저두 이제 서운한 거 다 잊을게요.”



“하하하 진짜로?”



“대신!”



“저 바다 보고 싶어요. 이번 주에 바다 보여주세요.”



“바다?”



“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그 동안에 나쁜 기분들도 다 날려버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그 정도 쯤이야. 부산 해운대에 내가 알고 있는 좋은 호텔이 있어. 거기로 가자.”



- 찌릿



“지금 이상한 생각 하신 거 아니죠?”



호텔이라는 말에 살짝 경계하는 혜리.



“아냐아냐 거기가 진짜 오션뷰 끝내줘서 그래. 한번 보면 깜짝 놀랄걸?”



“... 믿을게요. 거기 주소 보내줘요. 우리 호텔 앞에서 만나요.”



“어? 왜? 내 차 타고 같이 가지. 그 편이 더 편할 텐데.”



“출발은 그냥 혼자 하고 싶어서요. 안돼요?”



“아니아니 안될 거 있나. 그래. 그럼 주소 보내줄게 거기서 보자.”



혜리의 마음을 완전히 풀어주기 위해 현민은 지금 당장은 그녀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기로 했다. 게다가 여행을 가자고 먼저 말하다니.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칠 현민이 아니었다.



‘큭큭큭 여행 갔다오면 앞으로 이런 도도한 척은 못하겠지.’



많은 여성편력으로 잠자리 스킬에 자신이 있던 현민이 스무살 여대생 한명 못 구워 삶으랴. 침대에서 앙앙거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여자가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되는지 생각만으로도 테이블 아래에서 자지를 빳빳하게 세운 현민. 속으로는 온갖 음탕한 생각을 하면서도 혜리에게는 다정하고 착한 웃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남녀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