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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





혜리와의 여행 당일. 현민은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혜리가 평소 자신이 원하던 이상형에 가깝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이게 사랑인가...’



“풋!”



생각만 해도 스스로가 오글거리는 기분이다. 풍족한 가정환경과 괜찮은 외모. 덕분에 남들보다 쉽게 많은 여자들과 만나왔던 현민이다. 겨우 1박2일 여행 정도로 설렐 짬빱이 아니다.



‘그래. 내 페이스를 유지하자. 고작 스무살에게 끌려다니는 것도 존심 상하니까.’



지금까지는 저자세로 혜리에게 굽히고 들어갔지만 더 이상은 끌려 다닐 수는 없다. 부산 여행을 계기로 관계의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올 것을 다짐하며 현민은 목적지인 부산으로 출발한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처럼 이번 여행,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에요. 여기이~”



혜리는 신이 났는지 현민의 차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 댄다. 그녀는 짧은 핫팬츠와 웨지힐, 어깨가 드러나는 오픈숄더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과하게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노출된 어깨선 때문일까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완전 여행 분위기 냈네.’



바다 가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 하더니 완전히 바캉스에 최적화된 옷차림이다.



“나도 조금 여유롭게 출발하긴 했는데 더 빨리 도착했네?”



“헤헤... 먼저 와서 바다를 해운대를 먼저 구경하고 있었어요. 오늘 날씨도 너무 좋아요. 주임님.”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네. 그럼 숙소에서 먼저 짐을 풀까?”



“네에 좋아요.”



현민에게 목적지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호텔은 훨씬 럭셔리 했다. 듣기론 해운대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와아 여기 너무 좋아요.”



“그치? 특히 여기는 오션뷰가 예술이거든. 오션뷰 룸은 쉽게 예약 못한다?”



체크인을 하고 룸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통창에 그대로 바다를 옮겨 놓은 듯 환상적인 오션뷰가 펼쳐진다. 현민이 왜 그렇게 큰소리 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뷰는 환상적이었다.



“와아...”



혜리는 그 풍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첫눈에 그녀는 이 환상적인 스위트룸에 반해버리고 만다.



“최 주임님 여기 많이 비싼거 아니에요? 너무 무리 하신 거 같아서 죄송한데...”



자신의 예상보다 너무 숙소가 좋아서 인지 혜리는 미안한 표정으로 현민에게 사과한다.



“이 정도는 부담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하하하.”



현민에게도 꽤나 큰 지출이었지만 혜리가 만족한 표정을 보니 돈값은 했다고 만족했다. 역시 여심을 사로잡기에는 분위기 있는 호텔만한 것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아 그럼 해운대까지 왔는데 본격적으로 바다 보러 가야지?”



혜리가 숙소를 보고 좋아하자 자신감이 올라한 현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오픈숄더 블라우스을 입은 탓에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피부가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진다. 흠칫 하기는 했지만 혜리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좋아요. 빨리 가요.”





- 쏴아아



모래사장에 파도가 부딪치며 반짝이는 물결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래도 해변가에는 꽤 많은 연인들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때? 오고 싶어 했잖아.”



현민과 혜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나란히 서서 모래사장을 걷는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에요. 너무 좋아요 헤헤.”



혜리는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해요? 최 주임님 우리도 사진 찍어요.”



“하하 그럴까?”



혜리는 폰을 들어 셀카를 찍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채 딱 붙어 사진을 찍는 혜리와 현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민은 자연스럽게 혜리의 손을 잡는다.



“앗...”



- 찰칵찰칵



그런 그의 스킨쉽이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긴 했지만 혜리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셀카를 찍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두 사람. 여느 연인들처럼 즐거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흐흐 역시 여행지에서는 꽤나 오픈마인드가 된단 말이지.’



혜리가 스킨쉽을 거절하지 않자 현민의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까지 감싼다. 블라우스 위로 갸녀린 허리가 그대로 느껴진다.



‘크으...허리도 존나 잘록하네.’



“아잉...부끄러워요... 최주임니임...”



“왜에? 이러는 거 싫어?”



“그건 아닌데에... 최 주임님 저어...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그래... 갔다 와.”



“쩝...”



‘썅 분위기 좋았는데.’



내친김에 키스까지 쭉 진도를 빼려던 현민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쉽게는 안 된다 이거지?’



현민도 꽤나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만큼 경험적으로 혜리의 행동이 밀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자칫 쉬운 여자로 보일까봐 한 두 번 튕겨주는 뻔한 액션. 그 정도도 모른 현민이 아니다.



‘풋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해 놓고 이제 와서 튕기기는’



그래도 혜리의 밀당이 싫지는 않다. 곰 같은 여자보다 여우처럼 살짝살짝 튕기는 혜리 같은 년이 따 먹었을 때 정복감과 성취감이 좋다.



‘그리고 남는 게 시간이니까.’



내일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훨씬 많을 것이다. 굳이 무리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안정적으로 가자.



혜리의 뒷모습을 보며 현민은 음흉하게 웃었다.



* * *



“뭐야? 싫다더니 누가 봐도 풋풋한 연인 같던데?”



“아니에요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해요 이대리님.”



“뭐야 그럼 연기야? 혜리야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꾸자 배우해도 되겠어. 김혜리양”



“피이... 이대리님이 먼저 시켜 놓고는 왜 놀리세요”



자신의 차를 타고 헤리와 함께 부산에 도착한 현우는 멀리서 최현민과 김혜리를 미행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모두 부산여행은 현우의 아이디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현민에게 관심이 없는 김혜리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저놈한테 한방 먹여줘야지. 최주임 저거 너한테 막 대한 놈이잖아.”



“당연하죠! 이 대리님. 계획대로 마지막 순간에 빵 차버리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기대돼요. 헤헤헷.”



아무리 현우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 한명을 농락시키는 것을 즐기는 혜리 역시 인성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뭐 생긴 것과 다르게 진작 여우같은 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인성 ㄷㄷ하네. 아니면 업무시스템으로 [호감]을 증폭시킨 탓에 이러는 건가?’



뭐 지금 와서 김혜리의 인성문제가 업무시스템의 영향인지 그녀의 타고난 성향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현우는 그저 이 유희를 재미있게 즐기면 될 뿐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숙소에 단 둘이 있을 때 뭐 별일 없었어?”



“아니 자기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아는지 슬쩍슬쩍 터치 하더라구요. 으... 짜증나.”



“뭐 가벼운 스킨쉽은 받아줘. 너무 쳐내면 쟤 자존심 상해서 확 끝내버릴 수도 있어.”



“네... 그래서 꾹 참았어요? 저 잘했죠?”



“그래 잘했어.”



“그럼... 저 칭찬 해주세요오. 이 대리님.”



혜리는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본다. 해운대에 온다고 평소보다 신경 쓴 메이크업과 헤어. 원래 잡티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인 탓에 짙게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볼에 바른 빨간 블러셔가 한껏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한다.



“뭘 칭찬해줘?”



“히이잉...”



모른척하는 현우의 태도에 혜리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온다.



현우의 시선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김혜리를 기다리는 최현민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던 현우는 보란 듯이 확 혜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긴다.



“꺅!”



해변의 태양이 분홍빛 틴트를 바른 혜리의 입술을 반짝인다. 앵두 같은 그 입술을 현우는 우악스럽게 자신의 입술로 덮어버린다.



- 쪼옥 쪽 쪽



틴트향인지 살구맛이 살짝 느껴진다. 촉촉한 입술을 충분히 맛본 현우는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는다.



“웃!”



주변에 인파가 꽤 많은 상황에서 이정도로 끈적한 키스를 할지 예상하지 못했던 혜리는 깜짝 놀라 입술에 힘을 주었지만 현우의 집요한 공략에 어쩔 수 없이 스르르 힘을 풀어버린다. 덕분에 물 만난 고기처럼 현우의 혀는 혜리의 입안 곳곳을 희롱하기 시작한다.



-추웁...쭈웁....춥춥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혀와 혀가 비벼지는 음란한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끈적한 딥키스가 한동안 이어진다.



‘너무... 격렬해...’



혜리도 연애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라 몇 번 가벼운 입맞춤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토록 혀와 혀가 뱀처럼 뒤엉키는 질척한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일까?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처럼 황홀한 쾌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씨발 모텔에 가지. 길바닥에서 왜 저래?”

“와 여자 얼굴 봄? 존나 부럽다.”

“오빠! 지금 뭘 보고 있는거야?”



- 웅성웅성



둘의 끈적한 키스가 이어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된다. 물론 혜리의 외모가 한몫했다. 그러나 현우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혜리의 혀를 유린한다.



한 손으로는 얇은 허리를 휘어감아 퇴로까지 완전히 차단된 탓에 혜리는 무방비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혀가 드디어 떨어진다.



-쯔억



끈적한 타액이 허공에서 늘어졌다 끊어진다.



“하아...하아...”



키스가 끝나고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혜리는 몽롱한 표정으로 현우를 응시한다. 얼굴을 이미 터질듯하게 달아올랐고 심지어 목덜미 여기저기까지 붉게 물들었다. 정성스럽게 바른 분홍 틴트는 쉴 새 없이 물고 빨린 탓에 잔뜩 번져버렸다.



“이 정도면 칭찬이 됐나?”



“...”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혜리. 이럴 때는 영락없는 스무살 여대생이다.



“최현민 기다리겠다. 이제 가봐.”



“네에...”



“이따 깨똑하고.”



혜리는 키스의 여운에서 벗어나 다시 최현민에게 돌아간다.





“최 주임님 오래 기다리셨죠?”



“응? 아냐. 바다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잘 가네.”



괜찮은 척 했지만 화장실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김혜리에게 전화를 할까 수없이 고민한 현민이었다.



‘화장실에서 도대체 뭘 한거야?’



화장실에 오래갔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현민은 애써 표정관리를 한다. 그런데



“혜리야 근데 입술이 왜 이렇게 번졌어?”



갈 때와는 다르게 완전히 번져있는 틴트가 현민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슨 물고 빨린 것 마냥.’



그의 추측은 정확했지만



“손 씻는데 물이 확 튀어서 다 번졌어요. 힝...제 얼굴 이상해요?”



“응? 아냐 하하하 그래도 이뻐 너무 신경 쓰지마.”



입술 좀 번졌다고 혜리의 미모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현민은 쓸데없는 생각을 집어 치우고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는다. 다시는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깍지까지 꽈악 쥔다.



“크음.., 그럼 저기로 가볼까?”



그래도 조금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하는 현민.



“네에. 저 가까이서 바다 보고 싶어요.”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해운대 해변가를 거닐었다.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 * *



“식사는 괜찮았어?”



어느새 어둑어둑 해변가에는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최현민은 주변에 괜찮은 일식집까지 예약을 해 두었는지 웨이팅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네에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헤헤헤.”



일인분에 10만원짜리 오마카세 스시가 입맛에 맞지 않을 리가 없었다. 최고급 호텔과 오마카세 일식집 예약까지 현민의 돈지랄은 혜리를 반드시 먹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식사와 함께 사케까지 시킨 그는 자연스럽게 혜리에게 권한다.



“이런 음식에 좋은 술이 빠질 수가 없지.”



“저어... 술 약한데.”



앞에 놓인 잔을 보고 살짝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혜리.



“아 이거 도수 별로 안 높아. 한 잔만 마셔봐.”



현민의 권유에 마지못해 한잔을 마신다.



“와아... 이렇게 맛있는 술 처음 먹어봐요.”



“하하하 그렇지? 나도 종종 마시는데 깔끔하고 맛도 좋아.”



처음이 어렵지 주거니 받거니 사케 한 병을 깔끔하게 비운 두 사람. 귓가에는 파도소리가 잔잔하게 들리고 여행의 분위기는 한 것 무르익는다.



“그럼... 이제 늦었는데 숙소로 돌아갈까?”



“앗...네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붉게 물든 혜리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푸욱 숙인 채 대답한다.



그리고 마침내 현민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