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기
< 55화 >





- 꽈악



흡연실에 둘만 있는 것을 확인한 최현민은 다짜고짜 현우의 멱살을 쥐어 잡는다.



“컥... 뭐하는 짓입니까? 최주임?”



185센티 훤칠한 기럭지의 최현민이 대한민국 평균체형 현우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자 자연스럽게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다.



‘이새끼 무슨 힘이...’



업무시스템 상태창에서 본 최현민의 [체력] 수치는 7. 잔여포인트로 1을 올리긴 했지만 [체력] 수치가 4 밖에 되지 않는 현우와 체급자체 달랐다. 애초에 피지컬로 현민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시발 체력은 국력이라더니 좀 올려놓을 걸...’



여직원들을 마구 박아댈 생각만 했지 이렇게 피지컬 쩌는 최현민과 다이다이를 뜨게 될 줄은 몰랐던 현우는 후회막심이다.



‘근데 이 새끼 갑자기 왜이래? 혹시 들켰나?’



혜리와 현민의 러브라인을 업무시스템으로 이간질 시킨 것?

부산 호텔에서 약에 취해 뻗어있는 최현민 옆에서 혜리의 처녀를 개통한거?

영화 데이트 중인 김혜리를 몰래 불러다 상영관 문 뒤에서 박아댄거?

아님 룸식 술집에 있는 혜리를 옆방으로 불러 떡친거?



뭐 하나만 걸려도 사생결단이 날 추접한 행위가 너무 많아 현우는 감도 오지 않는다.



‘근데 절대 알 수 없을 텐데 뭐지’



- 털썩



“헉헉헉...”



지금 여기가 회사인 것을 깨달았는지 최현민은 멱살을 부여잡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현우를 거칠게 내려놓는다.



“당...당신이 분명해. 당신 밖에 없어 확실해!”



“최주임! 술이라도 마셨습니까? 알아듣게 말하라고.”



“너지? 아무것도 모르는 혜리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뭐?”



“혜리의 옆자리에 딱 붙어서 내 험담을 한 게 분명해 이 개새끼.”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최현민. 현우는 일단 업무시스템에서 그의 상태를 확인한다.



[사용자 : 최현민] 주임

[나이 : 28] [키 :185] [체중 : 73]

[체력 : 7/10] [매력 : 8/10] [성욕 : 9(+2)/10] [멘탈: 2(-6)/10]



[심리 메시지]

담당 시스템 관리에 대한 [짜증]

김혜리에 대한 [호감] - 증폭 활성화

김혜리에 대한 [죄책감]  - 증폭 활성화

김혜리에 대한 [집착] (New!)



최근 혜리가 현우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최현민이 집요하게 스킨쉽을 요구한다고 한다.



‘성욕이 9까지 올랐고... [집착]까지 생겼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혜리가 행동하지 않자 성욕수치의 상승과 그녀에 대한 [호감]이 [집착]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내가 다 봤어. 근무시간에도 계속 작업을 거는거야? 혜리가 내 여친인거 몰라? 어?”



혜리의 철벽 때문에 현민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옆자리에 앉은 현우에게 튄 모양이다.



‘이새끼 무슨 초딩도 아니고 생각하는 게...’



인턴들에게 보통 회사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특히 정부정책에 따라 시행하는 혜리와 같은 체험형 인턴들은 대학생이기도 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인턴별로 한명씩 직원을 붙여주는데 김혜리의 멘토가 바로 현우였다. 때문에 멘티와 멘토가 가깝게 지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꺄아악! 이...이대리님! 괜찮으세요? 최주임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최현민의 불안한 행동 때문에 몰래 따라 나왔던 혜리는 현우가 멱살이 잡히자 깜짝 놀라 달려 나온다.



“뭐... 난 괜찮아요. 근데 최주임이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혜리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현우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코스프레를 한다.



지금은 여친 앞에서 최현민을 병신 만드는 것이 더 유리하리라.



“아니..난...”



“최 주임님 정말 실망이에요. 빨리 사과 안하시고 뭐하세요??”



평소 살갑게 짓던 눈웃음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하게 최현민을 째려보는 혜리.



“그...어... 제가 실수 했습니다. 이대리님... 제가 뭐에 홀렸나봐요..”



‘뭐 홀리긴 했지. 김혜리라는 여우년에게... 병신호구새끼.’



“뭐 서로 사귀다 보면 질투도 하고 그럴 수도 있는거죠. 최주임. 근데 최주임이 걱정하는 그런 관계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이제 그만 가세요. 최주임님. 그리고 이번 일은...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래...”



나중에 이야기 하자는 여친의 말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 최현민은 자신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어깨가 축 처진 채 흡연실을 빠져나간다.



“크으윽...”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



‘전에도 이러더니...’



“이대리니임... 정말 괜찮으세요?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크윽... 아냐야냐 그냥 요즘 가끔 이러더라구.”



“아까 머리 부딪치신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혜리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현우를 쳐다본다.



“정말 최주임 미쳤나봐요. 갑자기 왜 저러나 몰라”



정말 화가 났는지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최현민을 욕하는 혜리. 인상을 가득 쓴 얼굴이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이 현우는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최현민 주임한테는 제가 확실하게 경고해 놓을게요. 걱정마세요!!!”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호언장담하는 혜리.



‘이제 그만 최현민과는 끝내버릴까?’



혜리는 공식적으로는 현민과 사귀는 중이었지만 이미 현우의 여자였다.



비록 업무시스템 덕분이지만 이렇게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는 혜리를 현우는 공식적으로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진다.



“혜리야 이제 최주임이랑 정리할까? 가지고 놀만큼 가지고 논거 같은데?”



“네? 진짜요오?? 당연하죠. 이대리님 저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현우의 지시도 있었지만 자신의 대쉬를 받아주지 않는 현민을 농락시키기 위해 그와 거짓으로 교제한 혜리.



부산에서 술에 약을 타 재운 뒤 같은 침대에서 현우와 보냈던 첫날 밤, 현민과 데이트 중에 중간중간 현우와 몸은 섞은 일 등 그녀가 느끼기에 최현민에게는 이정도면 충분한 복수가 됐으리라.



슬슬 최현민과의 관계를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현우의 말은 혜리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 그럼 빨리 마무리 하자. 일단 최현민한테는 아무 액션도 취하지마.”



“네에~ 알겠어요 이대리님 전 대리님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헤헤.”



“아. 그리고... 정리는 이렇게 하자.”



한동안 이어지는 현우에 말에 혜리는 언제 웃었냐는 듯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다.



‘큭큭큭 최주임 기대하라구.’



자신이 생각해도 환상적인 플랜이라고 현우는 생각했다.



* * *



- 꺠똑



- 오늘은 퇴근하고 데이트 하는 거지?



- 알겠어요. 대신 최주임님 다신 그런 실망스러운 행동 안 할꺼라고 약속해 줘요.



- 그래 앞으로는 저번 같은 일 없을 거야.



- 알겠어요. 믿을게요. 최주임님.



“휴유 다행이다.”



흡연실에서 이현우의 멱살을 잡은 이후 일주일동안 최현민은 혜리와 만날 수 없었다. 그녀의 사무실 자리까지 찾아가 애걸복걸 했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눈초리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저녁에 드디어 일주일만에 혜리와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괜한 작업 걸지 말고 그냥 저녁만 먹어야겠어.’



레스토랑 예약과 트렁크에는 화해의 꽃다발까지 준비한 현민은 차 안에서 오늘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똑똑



이내 퇴근했는지 조수석 쪽에서 혜리의 노크소리가 들린다.



“어 왔어?”



일주일만에 혜리를 보는 현민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살짝 떨린다.



‘와우’



평소에도 현민에 눈에 이쁜 혜리였지만 오늘은 유독 더 신경 쓴 모습이었다.



그녀의 큰 눈을 더욱 강조하는 색조화장과 긴 눈썹. 평소 출근할 때 입던 단정한 옷차림이 아닌 짧은 기장의 스커트와 가디언 차림이었다.



얇은 가디건의 단추를 퇴근하면서 풀었는지 딱 달라붙는 나시티 위로 가슴굴곡이 그대로 현민에게 노출된다.



“네에 최주임님 오랜만에 저녁이네요 그쵸?”



“어...어 그래 배고프지? 빨리 가자.”



최근 쌓여버린 성욕 때문에 혜리의 살짝 노출 있는 옷차림에 바로 반응하는 자지. 불룩하게 솟은 바지를 감추려 현민은 곧바로 차의 시동을 건다.



- 부우우웅



최현민의 기분만큼이나 경쾌한 배기음이 회사의 지하주차장을 가득 채운다.





“파스타 맛 괜찮지?”



“네 저번에 왔던 곳이잖아요. 저 여기 좋아해요 헤헤...”



다행히 화가 풀렸는지 맛있게 파스타를 먹는 혜리. 파스타와 준비된 디저트까지 다 먹고 식사가 마무리 되자



“이거... 별건 아닌데 화해의 의미로...”



최현민은 아까 차 트렁크에 준비해 뒀던 꽃다발을 꺼내 혜리에게 건낸다.



“와아... 최주임님 꽃은 언제 준비하신 거에요? 못 봤는데?”



“하하 써프라이즈~ 아니겠어? 미리 알면 재미 없으니까.”



“고마워요. 저 너무 기뻐요 헤헤...”



최현민에게는 1도 관심이 없지만 예쁜 꽃다발을 마다 할 여자가 있겠는가?



- 찰칵찰칵



다양한 색의 장미와 안개꽃으로 가득 찬 꽃다발을 배경으로 혜리는 연신 샐카를 찍는다.



“좋아해서 다행이네 하하.”



수십장의 셀카를 찍던 혜리는 만족할만한 사진을 건졌는지 꽃다발을 테이블에 내려 놓고 현민을 바라본다.



“그럼... 최주임님 이제 오늘은 뭐 할꺼에요?”



“어? 저녁도 먹었으니까 이제 집에 데려다 줄려고 했지. 혜리 너 늦게 들어가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면서...”



사실 연락만 되면 늦게 들어가는 건 혜리의 부모님이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지만 일단 현민에게는 통금시간이 9시라고 못박아둔 그녀였다.



이미 현민의 수많은 수작들을 혜리가 단호하게 거절한 탓에 그 역시 오늘은 저녁만 먹고 그녀를 집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요? 히잉... 저랑 같이 있기 싫은 거에요?”



자신을 빨리 보내려는 현민에게 약간 서운함을 느꼈는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혜리.



“어? 아냐아냐. 그 그... 통금시간이 9시라고 해서 늦지 않으려고...”



혜리의 의외에 반응에 당황하는 현민.



“오늘은 부모님이 여행가셔서 좀 늦게 들어가도 될거 같아요오... 헤헤.”



‘오오!’



“그럼 뭐할까?”



“음... 별로 생각해본 건 없는데...”



“그럼 우리 야경 보러 갈까?”



“그럴까요? 좋아요!”



혜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현민이 보여주고자 하는 야경은 다름 아닌 호텔에서의 야경뷰였다.



오늘 혜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그녀의 늦게 가도 되다는 말 한마디에 현민은 성욕에 완전히 굴복해버리고 만다.



“여기야!”



“최 주임님. 여긴... 호텔이잖아요... 야경 보여주신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호텔 앞에 현민의 차가 멈추자 실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는 혜리.



“여기가 그래도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야경이 잘 보여 하하하 진,,,진짜라구.”



누가 듣더라도 같잖은 수작이었다.



‘아 시발 괜히 데려왔나.’



집에 안가도 된다는 말에 혼자 또 급발진을 해버린 것이 아닌가 현민은 후회했다. 그러나



“뭐... 그렇다고 하시면... 들어가요.”



평소와는 다르게 순순히 호텔로 들어가자는 혜리



‘어? 뭐야 이거? 그린라이트야?’



이미 반쯤 포기하고 차를 돌리려 했던 현민은 혜리의 의외에 승낙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드디어 자신의 노력의 결실을 맺으려는 것인가? 현민은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혜리를 에스코트 한다.



‘오늘은 술은 절대 한모금도 안 마실 거야. 술은 나의 원수.’



지난번 부산에서 완전히 끊겨버린 기억 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한 현민은 각오를 다지며 호텔의 방문을 연다.



깔끔하게 정돈된 하얀 침구와 분위기 있는 조명이 혜리와 현민을 반긴다. 뻥 뚫려있는 통 창으로 그대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 아무리 여기가 수도권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도 썩 괜찮다.



“어때 야경 괜찮지?”



“네...”



호텔룸에서 남겨진 단 둘만 있어서 일까? 혜리는 약간 긴장했는지 표정이 살짝 굳어있다.



“그럼...”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현민은 혜리에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