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사용자 이현우]
[잔여 근로계약서 : 151개]
회사에서는 휴게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섹스. 퇴근 후에는 잠들기 전까지 미친 듯이 박아댄 끝에 현우는 150개에 근로계약서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서진아와 은설, 김혜리는 현우의 호출만 있으면 불려나와 오나홀처럼 질내에 자지를 받아드려야만 했다.
‘근데 점점 더 얻기가 힘들어지는데?’
[근로계약서]는 분명 여직원들의 [만족도]에 대한 보상이다. [근로계약서]는 섹스로 인한 그녀들의 [만족도]가 오를 때 지급된다.
‘예전에는 분명 두 세번만 보내버려도 몇 개씩 줬는데...’
사실 섹스도 중요하지만 그 스토리텔링도 이에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현우에게 최근 며칠간의 섹스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퇴근해서는 자취방에 혜리를 불러서 하거나, 은설의 오피스텔에서 섹스, 서진아의 경우에는 이병주가 없는 시간에 신혼집에서 따먹긴 했지만 이미 다 해본 것들이었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말도 섞지 못했을 매력적인 여성들과의 섹스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우가 느끼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워크샵에 가서 직원들이 있는 식당 바로 앞에서 서진아에게 시켰던 오럴플레이나 약 때문에 자고 있는 최현민 옆에서 취한 김혜리의 처녀개통 등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꼴릿한 상황들이 많았다.
‘하긴 내가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데 파트너가 만족할 리가 없지.’
꼴릿한 상황에서 나오는 찐텐이 아닌 [근로계약서]를 한 개라도 더 얻기 위해 기계적으로 박아댄 섹스의 한계가 아닐까? 현우는 생각했다.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은설, 서진아, 김혜리의 만족도가 아니라 최고은을 공략하는 것이였기 때문에 현우는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자칫하면 몇 달 뒤에 당장 파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 시작해야겠다.”
근로계약서를 필요한 만큼 모은 현우는 회사 내에서 입이 가벼운 직원, 확성기처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곤
- 최 과장님. 저 정도면 인사고과 S급 아닙니까?
- 김 대리. 내가 그래도 동기들 중에는 업무능력이 제일 낫잖아
- 팀장님. 제가 작년에 업무협조 잘 해드린 거 기억나시죠? 그래도 제 직급 중엔 제가 제일 낫죠? 하하하하
“하아... 시발...”
급격하게 밀려오는 현자타임. 내 입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려니까 낮 간지러워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 새끼들은 참 대단해.’
스스로 온갖 금칠을 해대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새삼스럽게 존경이 느껴진다. 물론 그 뻔뻔함에 대한 놀라움이다. 어쨌든 얼굴까지 벌겋게 붉혀가며 회사에서 소문 좀 낸다하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전달했다.
[근로계약 - 중상모략이 체결되었습니다.]
[근로계약 - 중상모략이 체결되었습니다.]
[근로계약 - 중상모략이 체결되었습니다.]
...
...
당연히 그들과는 근로계약 - 중상모략을 체결하였고,
[현재 중급 관리자로 적용되는 신뢰도는 “다소 높음”입니다.]
다소 높음이라는 신뢰도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CEO다.’처럼 완전히 불가능한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좋은 평판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현우였다.
‘이제 할 만큼은 다했다. 기다려보자.’
최고은이 회사로 복귀한 이후 쉼없은 섹스와 소문 퍼트리기에 공을 써온 현우는 이제 결과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어째 회사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섹스와 여론조작에 몰두한 탓에 약간은 죄책감이 들지만
‘이 회사에 일하는 놈이 얼마나 있다고.’
수많은 회사의 폐급직원들을 생각하며 자신정도면 퍼트린 소문처럼 S급이 아닐까 깊은 착각에 빠진 현우였다.
그리고 대망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 웅성웅성
10시경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인사발령 문서 때문에 갑자기 술렁이는 사무실.
- 딸깍
현우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인사발령 문서를 클릭한다.
- 인사발령 사항 -
성 명 : 최고은
직 급 : 팀장
현직부서 : 해외파견
발령부서 : 조직혁신TF팀
'조직혁신TF팀이라...‘
[사용자 : 최고은]
[심리 메시지]
회사의 성공적인 혁신에 [기대감]
업무시스템에서 확인했던 그녀의 심리메시지. 아마도 최고은은 이미 복귀 전부터 자신이 맡아야할 업무를 알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정기인사 시즌이라 최고은 외에도 수많은 팀장과 본부장, 그리고 일반 직원들까지 많은 인원의 인사발령이 동시에 났다. 대충 넘겨도 몇 페이지를 넘어가는 수많은 발령지들.
그리고 현우는 인사발령지 끄트머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성 명 : 이현우
직 급 : 대리
현직부서 : 경영지원팀
발령부서 : 조직혁신TF팀
“예쓰!”
‘해냈다아!’
얼굴에 철판을 깔고 회사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이는 노가다(?)을 한 결과, 당당히 최고은과 같은 TF팀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조직혁신TF팀이라고?’
TF. 테스크 포스(Task Force)의 줄임말로 군(軍)의 기동부대(機動部隊, 특수임무가 부여된 특별 편제의 부대)에서 사용되던 것이 현재는 일반조직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로 변화하였다.
대충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특별 전담 조직’정도가 되겠다.
FT팀이야 특별감사TF팀, 시스템구축TF팀 등 평소에도 뭔 일만 터지면 만들어대던 것이었지만, 앞에 붙은 조직혁신이라는 단어가 조금... 아니 존나게 불안하다.
혁신. 애초에 태생부터 공공기관과 완전한 대척점에 놓인 존재다. 국가에서 수행하는 사업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 쉽게 말해 정부의 하청업체다.
초기에는 본청인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주요직책에 임명되기 때문에 공직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짬만 높으면 다 되는 연공서열, 지극히 수직적인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비효율적인 행정업무 프로세스. 업무능력보다는 정치력이 중요한 인사제도 등등
공직사회의 나쁜 건 다 가져온 게 바로 이 현우가 다니는 공공기관이다. 이 사실을 윗대가리들도 잘 알고 있는지 항상 새로 취임하면 시작하는 것이 바로 ‘혁신’
‘시발 그놈의 혁신타령. 혁무새 새끼들’
CEO만 되면 혁신병이 걸리는 것인지 아주 때 되면 날아오는 철새마냥 매년 반복되는 혁신 또 혁신. 세계일류 IT기업의 수평적인 조직과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도입하자는데 공공기관에서 그게 될 리가 없다.
‘그게 됐으면 이 회사가 사과고, 내가 스티분 잡수지.’
결국 혁신이라는 명목의 또 다른 업무. 업무를 위한 업무가 바로 혁신이다. 전 직원이 혁신이라는 단어에 진절머리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데 그 말많고 탈많은 혁신을, 심지어 조직혁신을 최고은이 맡겠다니.
최고은의 탈공공기관급 업무역량에 대해 익히 엄청난 소문들을 들었지만 과연 그녀가 원하는 ‘조직혁신’을 해 낼 수 있을지 현우는 의문이었다.
‘하 좆될거 같은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성과는 전무한 그런 엿 같은 부서의 냄새가 난다. 몇 년 안되는 짬이지만 현우가 조직혁신TF팀에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었다.
‘근데 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최고은을 공략하지 못하면 결국 3개월 뒤 파면이다. 지금 부서를 따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니 이대리. 방금 올라온 인사발령지 봤어요? 이대리도 있던데?”
“그니까 이대리 진짜 위에서 잘 보였나봐? 혁신TF 거기 완전 CEO가 힘주는 부서인데.”
“히잉... 이대리님 다른 부서 가시는 거에요?”
팀장과 김혜리를 포함한 팀원들까지 현우의 인사발령에 관심을 갖는다.
“글쎄요...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단 현우는 모르는 척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는 자신에게만 업무를 잔뜩 던져대던 탓에 꼴도 보기 싫은 팀장과 팀원들이었지만 업무시스템으로 조작 한 뒤에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인지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김혜리도 있고 말이지.’
칙칙한 사무실에서 발랄한 20살의 김혜리의 존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활력을 주곤 했다. 손에 착착감기는 속살 역시 휴게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즐겨왔던 터라 그 아쉬움이 상당했다.
그러나 현우는 그런 아쉬움들을 뒤로하고 묵묵히 자리이동을 위해서 자신의 짐을 싸기 시작한다.
“제가 도와드릴께요. 이대리님.”
현우가 떠난다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혜리는 옆에 다가와 이사를 돕는다.
“나 멀리 안가. 같은 건물이라고.”
“그래도오요...”
랜덤채팅 어플로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주인님으로 섬기고 있는 주제에 혜리는 사랑하는 연인과 생이별이라도 하는 듯 침통한 표정이다.
‘하... 저 순수한 척 한는 얼굴을 보니 또 변태적인 지시 마렵다.’
덕분에 현우는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들어가 어플로 혜리에게 사무실에서 팬티라도 까고 자위를 시키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런 욕망은 잠시 미뤄놓고 자신의 짐을 들고 새로 발령 받은 부서인 조직혁신FT팀으로 향한다.
그 곳에는 자신이 3개월 안에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최고은이 있다.
* * *
“안녕하십니까. 경영지원팀에서 새로 발령 받은 이현우 대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현우씨. 최고은입니다.”
‘이현우씨? 씨이?’
대리라는 엄연한 직급이 있는 현우인데 ~씨 라니. 물론 최고은이 상급자이기 때문에 문제 있는 호칭은 아니지만 회사 내에서는 통상 존중의 의미로 ~씨 대신 직급을 불러준다.
‘원래 직급으로 안 부르나?’
그러나 현우의 이런 생각은 곧바로 부정당했다.
“안녕하세요. 조직팀에서 새로 발령 받은 박혜수 주임입니다.”
“네 반가워요. 박주임님.”
‘시발...’
대회의장에서 대놓고 가슴을 쳐다본 탓일까? 벌써 현우는 최고은에게 찍힌 모양이다.
‘아니 가슴 좀 쳐다봤다고 이런 취급을 받는다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현우의 눈앞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최고은의 흉부. 스스로도 신경쓰고 있는지 단정한 검정색 자켓은 단추까지 모두 채워서 완전하게 가슴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단추가 당장이라도 죽여 달라는 거 같은데?’
머리만한 가슴 때문에 당장이라도 탄환처럼 앞으로 튕겨나갈 것만 같이 팽팽하게 당겨진 단추. 단추와 단추 사이에 잔뜩 벌어져 현우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빨아드린다.
“흠흠!.”
‘앗!’
- 찌릿
그런 현우의 시선에 최고은은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현우를 째려본다.
‘하아...’
아무래도 처음부터 완전히 찍혀버린 것만 같다.
“자 팀원들이 다 모이셨으니까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번에 해외파견에서 복귀하고 조직혁신TF 팀장으로 발령받은 최고은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의 테이블에서 일어난 최고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팀원들에게 인사한다. 그제야 현우는 그녀의 가슴이 아닌 얼굴을 재대로 응시한다.
갸름한 계란형 얼굴과 투명한 피부는 아직 20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단 하나의 머리카락조차 흘러내림 없이 단정하게 빗어 올린 올림머리는 최고은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착용한 검은색의 뿔테 안경 역시 그녀의 단호한 인상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외부활동을 잘 안하는 걸까? 새하얀 피부와 꼭 다문 작은 입술 아래 있는 작은 점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커다란 눈과 짙은 속눈썹, 그리고 마치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동자.
은설도 꽤나 도도한 느낌이었는데 최고은 앞에서는 그저 앙칼진 고양이 정도였다.
‘호랑이네...호랑이야.’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안광 때문일까? 범을 연상시키는 강한 인상이었다.
입은 옷 역시 그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와 무릎기장의 단정한 치마, 같은 색의 자켓. 그리고 단정한 검은 구두까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은 깐깐한 여상사의 전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