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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





- 이대리 몸은 좀 괜찮아요?



본인의 실수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최고은은 현우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



조직혁신TF팀이 업무량은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많았지만 최고은은 단 한 번도 사적으로 팀원들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꼰대들이 자주하는 근무시간 외에 업무지시나 퇴근 후 문자 역시 없었다.



그런 최고은이 현우에게 보낸 개인적인 안부 문자. 제법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 네. 괜찮습니다. 팀장님



- 이대리 이번 출장 건은 정말 면목이 없네요. 다시 한 번 사과드려요.



‘자기 실수가 신경이 쓰이긴 한가보네.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걸 보니. 잠깐만... 미안함?’



[사용자 : 최고은]

[심리 메시지]

팀원 이현우에 대한 [미안함] - 증폭 활성화



‘이거구나!’



업무시스템으로 증폭시킨 현우에 대한 [미안함]. 최고은이 평소 하지도 않던 개인적인 문자를 보낸 이유였다.



‘희망이 보이는데?’



차 안에서의 둘만의 완벽한 기회를 놓친 현우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직 그녀를 공략할 기회는 있었다.



- 그럼 술 한잔 사주세요. 팀장님. 밤새 추위에 떨었더니 소주가 땡기네요.



“...”



설레는 마음에 곧바로 문자를 보냈건만 한동안 답장이 없는 최고은.



던져놓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했다. 아마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모양.



‘가뜩이나 차 안에서의 사건 때문에 어색한데 괜히... 들이댔나?’



성급한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며 침대에서 이불킥을 하는 현우. 그러나



- 그래요. 제 잘못도 있으니... 시간은 언제가 괜찮아요?



“휴우...”



다행히 현우의 제안을 승낙하는 최고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그녀가 느끼는 [미안함]이란 감정은 사실 상대를 미안하게 한 뒤에 가장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이 그녀를 공략할 최고의 시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현우는



- 미룰 거 없이 오늘 저녁 어떠세요?



단숨에 직구를 던진다. 그리고



- 알겠어요. 어디서 만날까요?



최고은의 문자가 도착했다.

* * *



웅성웅성



회사 근처 시내에 있는 술집으로 약속장소를 잡은 현우. 퇴근시간과 겹쳐서 일까?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 딸랑



먼저 도착해 최고은을 기다리고 있던 현우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여기에요 팀장님.”



현우를 찾은 최고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테이블을 향해 다가온다.



분명 집에서 쉬다가 나왔을 텐데 그녀의 옷은 출근복장이다. 구김 하나 없는 날카롭게 각이 선 자켓과 같은 색상의 검정 스커트. 저녁이라 약간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살색스타킹까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영락없이 퇴근 후 회식을 하는 직장인의 모습이리라.



“...”



안주를 두고 테이블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도 컨디션이 괜찮은가 봐요? 술이 먹고 싶은걸 보니.”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최고은이었다.



“하하하... 남잔데 그 정도는 문제없죠. 팀장님도 괜찮으신거죠?”



“네? 어... 저도 괜찮아요. 아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검정색 뿔테안경을 손으로 살짝 올린 최고은은



“어제 일은 정말 미안했어요. 이대리.”



정식으로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를 한다. 팀장으로서 그래도 일개 팀원인 현우에게 이렇게까지 저자세일 필요는 없었는데, 분명 업무시스템의 [미안함] 감정의 증폭이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아니면 원래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성격이리라.



‘둘 다 인가?’



평소 그녀의 성격을 보면 업무시스템의 증폭만은 아닌 것 같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그만 고개를 드세요 팀장님.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



“아뇨... 사과 할 건 확실하게...”



“아! 자꾸 그렇게 사과하지 마시고 그냥 한잔해요. 우리. 네?”



계속되는 팀장의 사과에 어색했는지



- 꼴꼴꼴꼴



현우는 최고은 앞에 놓인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원샷! 하시면 어제일은 다 잊겠습니다. 팀장님.”



“...”



네비도 못 보고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운전한 것, 산 속에서 체온유지를 위해 몇 시간이나 완전히 현우와 밀착했던 것.



아직도 그의 체취와 품 안의 온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최고은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크으...”



단숨에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 탁



거의 동시에 술잔을 내려놓은 두 사람은 앞에 놓인 육회를 한 점씩 집어먹는다.



“이제 됐나요? 그럼 이만 일어나...”



“에이... 팀장님. 한잔만 마시고 가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저 정말 서운합니다?”



술 때문에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팀원인 현우에게 보이기 싫은지 최고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현우의 핀잔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만 가야하는데’



사실 최고은이 지키는 여러 가지 철칙 중에 금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직장생활의 대부분의 사건, 사고들은 바로 술자리에서 일어난다. 성희롱, 격한 몸싸움과 서로를 향한 비방, 욕설과 갈등. 이 모두가 술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최고은은 입사 이후에 단 한 차례도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승진을 위해서는 윗사람들과의 적당한 술자리와 필수였지만 최고은은 그런 것들을 경멸했다. 업무 외적인 술자리와 정치질로 승진하는 것은 그녀가 원치 않는 것이었다.



직장인은 오직 업무능력만으로 평가받아야하고, 그것으로 지금의 팀장까지 올라온 최고은이었다.



‘술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서 오늘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현우에게 실수한 것 때문일까? 그가 내민 술잔을 단칼에 쳐낼 수 없는 최고은이었다.



- 꼴꼴꼴



“자 짠! 하시죠. 팀장님. 오늘 저녁은 정말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최고은의 잔에 소주를 채운 현우는 자신의 술잔을 들어 그녀에게 내민다.



“...”



“아. 팀장님! 저 손 떨어지겠습니다.”



‘이대리도 내색은 안하지만 많이 힘들었나? 평소와는 다른데...’



지극히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일체 하지 않던 현우였는데 오늘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이 어젯밤의 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최고은은



“하아...”



- 챙!



마지못해 현우의 장난에 맞춰주기로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술잔은 쉴 새 없이 채워지고 비워지고를 반복한다.





“으으...”



최고은은 취기 때문인지 고개를 완전히 테이블에 박은 채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평소 흐트러진 모습 없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던 모습만 봐서일까? 그런 그녀의 모습이 현우는 놀랍기만 하다.



“꼴랑 둘이서 2병 마셨는데...”



내심 자신보다 주량이 세면 어쩌지 걱정한 현우는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빠른 승진, 모두가 인정하는 업무능력, 바늘하나 찌를 틈 없는 포커페이스. 자신의 마음까지 꿰뚫어보는 듯 한 눈빛까지. 그야말로 완벽주의자 최고은이었기에 술까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특히 최고은 정도로 높은 자리까지 오르려면 어느 정도 주도(酒道)에 능해야 하건만 그녀는 주량이 한 병도 안되는 술찐이었다.



‘허탈하네...’



숙취해소음료까지 술집에 들어오기 전에 마시고 만전에 준비를 했던 현우는 소주 한 병에 완전히 꽐라가 된 최고은의 모습에 약간 허탈감까지 느껴진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술집 안에는 두 사람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2차를 가던, 자리를 옮길 타이밍이었다.



‘근데 2차는 커녕 바로 집에 보내야겠는데.’



그러나 최고은은 완전히 꽐라가 된 상황. 귀가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팀장님! 팀장님!”



“으음... 이대리...”



“댁에 모셔다 드릴께요. 주소! 주소를 알려주세요.”



멀쩡한 상태였다면 여자 혼자 사는 자신의 주소를 쉽게 말해 줄 리 없겠지만, 반쯤 기절한 최고은을 흔들며 몇 번을 묻자 횡설수설 대답한다. 다행히 그녀의 집은 술집에서 맞은편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끄응... 가시죠. 팀장님.”



“으으....으으으”



그녀를 어깨동무로 일으켜 세우자 역시나... 공격적인 바스트가 현우의 온몸을 덮친다. 그 압도적인 육탄공격에 곧바로 발딱 서는 현우의 물건.



‘후우... 참자...참자... 고지가 눈앞이다.’



완전히 술에 취한 여자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데,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기회는 없었다.



‘근데...후우...’



키가 커서인지 아니면 가슴무게 때문인지 생각보다 무거운(?) 최고은이었다. 최근에 사무실에서 혜리를 번쩍 들고 마구 박아댄 현우로서는 자연스럽게 혜리와 최고은의 무게를 비교하게 된다.



“혜리는 정말 깃털 같았구나...”



맨 정신인 최고은이 들었다면 내심 발끈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현우의 품에 아기처럼 안겨있다.



- 삑삑삑삑



- 삘릴릴리



술 취한 최고은에게 집요하게 물어본 끝에 알아낸 그녀의 현관 비밀번호. 현우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금남(禁男)의 지역이었던 최고은의 오피스텔로 무혈입성한다.



“와아...”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꾸며놓은 은설의 오피스텔과는 완전히 180도 다른 최고은의 집. 그야말로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네.’



오피스텔 옵션으로 제공되는 세탁기와 냉장고, 에어컨, 옷장, 기본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최고은의 가구는 침대 단 하나였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 이외에는 개인적인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오피스텔.



“빈집...같네.”



취미를 위한 물건이나 심지어 TV조차 없는 오피스텔을 보니 회사생활 이외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 털썩



“으으음...”



현우는 일단 최고은을 그녀의 침대에 눕혀놓는다.



- 힐끔



그리고 최고은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현우는 정신 차리지 못한 틈을 타 그녀의 집안 곳곳을 살핀다.



화장실에는 간단한 세면도구와 몇 개의 화장품, 드라이기가 전부였다. 옷장에는 매일같이 입는 정장 몇 벌이 깔끔하게 다려져 있었다.



- 드드륵



“오우야...”



그리고 옷장 아래 서랍에는 그녀의 가슴만큼이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브래지어와 팬티세트 그리고 수영복과 수영모가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등...등짝을 아니...컵! 컵을 보자 컵을!”



현우의 최대 관심사였던 최고은의 가슴 컵. 조심스럽게 브래지어 하나를 들어 택을 살펴보니



‘70H!!!'



이 알파벳 한 글자가 뭐길래? 남자의 가슴을 뒤흔든단 말인가? 환상적인 서진아의 물방울 모양의 가슴도 고작 D컵. H컵 앞에서는 마치 애교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과한 기대는 금물이다. 서진아의 가슴이 왜 환상적인가? 단순히 크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처짐 없이 봉긋하게 솟은 탄력과 수줍게 매달린 핑크빛 유두, 푸른 실핏줄이 그대로 보이는 투명한 살결.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컵 사이즈만 크다고 능사가 아니다. 크기만큼 중력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할매젖이라는 보고 싶지 않는 카드가 나올지도 모른다.



“쓰읍...”



술 때문에 침대에 기절하듯 쓰러져 있는 최고은의 가슴을 보면서 온갖 망상을 하던 현우는 일단 그녀의 가슴을 까보기로 한다.



- 스윽



열지 말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잔뜩 긴장을 한 현우는 떨리는 손을 최고은의 가슴에 살며시 올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업무시스템으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보지만



[사용자 : 최고은]

[심리 메시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만족감]

회사의 성공적인 혁신에 [기대감]

능력 없는 직원에 대한 [업신]

자신감 없는 이성에 대한 [경멸]

팀원 이현우에 대한 [신뢰] - 증폭 활성화

팀원 이현우에 대한 [미안함] - 증폭 활성화



여전히 변동사항은 없다.



서진아의 경우에는 심리메시지에 이현우와의 정사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은설과 혜리의 경우에는 이현우에 대한 [애정]이 존재했었다. 즉 덮치더라도 확실한 안전장치가 존재했었다.



반면의 최고은은 [신뢰], [미안함] 정도의 애매한 감정들뿐이다. 때문에 완벽한 기회를 잡은 현우였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놓칠 수 없지.’



각오를 다지며 현우는 두 손바닥으로 거침없이 최고은의 탐스러운 가슴을 움켜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