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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





“와아 칼리반베이!”



가는 내내 현우의 지각 때문에 인상을 쓰고 있던 은설은 워터파크가 보이자 그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미소를 짓는다.



“워터파크는 매년 가는 거야?”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에는 유독 워터파크와 해수욕장이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당연하게도 두 곳의 공통점은 몸매를 한껏 자랑할 수 있는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이다.



“1년에 한번은 꼭 와요.”



이렇게 현우와 단 둘이 워터파크에 올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은설은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매표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예매권을 손에 차는 팔찌로 교환한다. 물론 예매는 은설이 미리 해 놓은 것이었다.



“그럼 옷 갈아입고 봐요.”



- 또각또각



은설은 그렇게 여자탈의실로 들어갔다.



반바지형 수영복만 덜렁 준비해온 현우는 딱히 갈아입는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적당히 몸에 썬크림만 덕지덕지 바른 뒤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풀 앞으로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



워터파크에는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지만 초여름부터 물놀이를 즐기러 온 인파로 북적거렸다.



경포대도 며칠 전에 갔다 왔지만 확실히 워터파크에 빡세게 풀 메이크업과 몸매를 드러내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많았다.



‘물에 들어갈 건데 헤어는 왜 한거야?’



정성스럽게 머리까지 드라이한 여자들. 그들은 물놀이를 즐기기 보다는 SNS에 올릴 인생사진을 하나라도 더 찍기 위해 이곳을 찾은 모양이다.



- 찰칵찰칵



역시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스마트폰의 셔터음. 남친으로 추정되는 시커먼 남자들이 열심히 허리를 숙이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최대한 길쭉하고 예쁜 여친의 모습을 담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떡보정을 한 사진 속 여자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열심히들 산다.’



SNS는 커녕 자신의 사진도 잘 찍지 않는 현우로서는 저 행위가 도저히 이해되질 않는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어 있었다. 저 체력으로 놀이기구나 더 타는 게 낫지 않을까?



은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현우는 워터파크의 여자들을 한명한명 스캔한다.



“으음...”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10명의 남자 중 9명이 뒤돌아서 다시 처다 볼 정도의 미모의 여직원들을 취한 현우는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눈이 잔뜩 높아진 상태였다. 업무 시스템 관리자 권한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서진아나 은설, 김혜리, 최고은 정도의 여자는 워터파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영복에 과하게 뽕을 집어넣으면 바스트모핑이 부자연스럽다. 자연스럽게 출렁이는 최고은과 서진아의 참젖을 수없이 주물러댄 젖문가 현우는 이곳에 여성들의 대부분이 의젖 또는 과한 뽕을 착용한 사실을 알아챈다.



‘별로 눈에 띄는 여자는 없네.’



“뭘 그렇게 다른 여자들을 쳐다봐요?”



그 때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은설이 현우의 등 바로 뒤에서 훅 나타난다.



“아씨... 깜짝이야. 언제 나온 거야?”



“방금요. 근데 제 질문에 왜 대답 안 해줘요? 이대리님 다른 여자들 보고 있었죠?”



“뭘 다른 여자들이야. 그냥 사람들 구경하고 있었는데.”



“흐응... 거짓말...”



현우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 은설은 눈을 흘기며 그를 째려본다.



“너 근데... 수영복이... 그게 뭐야?”



현우는 그제야 은설의 몸을 훑는다. 분명 입은 건 비키니인데 모양이 뭔가 이상하다.



“흥... 요...요즘 SNS에서 이렇게 입는 게 엄청 유행이라구요.”



“진짜? 여기서 그렇게 입은 건 너뿐인데?”



“해...해외에서요!”



잘 관리한 자신의 몸매를 오늘 워터파크에서 원 없이 자랑하려는 듯 은설의 비키니는 화려했다.



위아래 시원해 보이는 블루색의 비키니를 셋트로 입었는데, 하의 팬티는 양 옆이 얇은 끈으로 되어 있어 중요부위를 제외하고 그녀의 허벅지와 힙라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양쪽의 끈은 나비매듭으로 묶여있었는데 현우는 그 매듭을 확 풀러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녀가 탈의실에서 나오자 워터파크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대부분은 남자들이었다. 그 남자들도 대부분 현우와 같은 생각이겠지.



다행인지 허리에 둘러 묶은 천이 조금은 그녀의 하체를 가려주고 있었다. 그마저도 시스루 원단이라 안쪽이 비치는 재질이다.



현우에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건 상의였다. 마치 가슴을 가리는 비키니를 뒤집어 입은 듯 했다.



‘뒤집어?’



“너 그거 뒤집어 입었다.”



“알아요! 일...일부러 그렇게 입은거에요! 정말 이대리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경 써서 입었는데 현우가 알아주지 않으니 은설은 발끈한다. 물론 일부러 이렇게 입었지만 그녀도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은설의 설명으로는



‘업사이드다운 비키니?’



라고 했다. 말 그대로 뒤집어 입는 것. 기존에 비키니를 뒤집어 들고 가슴 밑과 등을 두르는 끈을 목에 걸어서 입어주면 완성이다. 원래 목을 감싸는 끈은 반대로 등에 두르고 매듭을 만든다.



“그래서 업사이드다운...”



원래도 천의 면적이 적은 비키니인데, 똑바로 입으라고 만든 것을 뒤집어서 입었으니 더욱더 가슴골과 특히 밑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생소하지만 확실히 기존의 착용방법보다 더 노출이 많아진다. 하의의 팬티끈도 가뜩이나 얇은데 배꼽 높이까지 잔뜩 추켜올린 탓에 위아래로 아찔한 쉐입을 만들어 낸다.



늘씬한 각선미와 탄탄한 복근, 얇은 허리와 그와는 대비되는 풍만하게 떨어지는 골반라인이 업사이드다운 비키니와 아주 잘 어울렸다.



물론 가슴까지 서진아 정도로 컸다면 좋았겠지만 은설의 꽉찬 B컵의 가슴도 분명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더 컸다면 슬랜더인 그녀의 몸매와는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것 같다.



“이게 셀럽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방법이라고?”



“그...그래요. 그때 그렇게 뽕 같은 거 넣는 거 싫어한다고 해놓고는...”



‘뽕...? 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처음 업무 시스템을 통해 은설을 공략할 때 현우는 서진아와 그녀의 몸매를 비교하며 자존심을 건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은설은 서진아의 몸매는 전부 뽕이고 자신은 자존심 상하게 뽕 따위는 착용하지 않는다며 발끈 했었다. 뽕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함께 모텔까지 갔었으니, 그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몸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확실히 비키니 상의를 뒤집어 입는 방법으로는 안쪽으로 뽕을 절대로 넣을 수 없었다. 밑가슴이 훤히 드러나니 아래쪽에서 가슴을 받혀주는 뽕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별로에요?”



“아... 어... 아냐 괜찮네. 이것도.”



뽕을 넣었을 거라는 의심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저렇게 비키니를 뒤집어 입을 생각을 할 정도라니. 은설은 그만큼 노력으로 만든 자신의 몸매가 보형물 따위로 폄하되기를 원하지 않는 듯 했다.



그 노력이 가상해 현우는 적당히 그녀의 장단에 맞춰준다. 그제야 은설은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평소에 그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럼 빨리 워터파크 배경으로 사진 찍어요!”



단 한마디 그녀의 장단에 맞춰준 결과, 현우는 한 시간을 사진기사 노릇을 해야만 했다.



* * *



“아 그만그만.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해.”



물놀이를 하기도 전에 완전히 지친 현우는 비치체어에 벌러덩 들어 눕는다. 현우가 사진 찍기를 거부하자 은설은 준비해온 삼각대를 꺼내 혼자 열심히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질리지도 않나?’



물놀이보다는 사진이 워터파크에 온 주된 목적임이 분명하다. 그녀만이 아니다. 주변의 여자들도 몇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포즈만 바꿔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래도 뭐... 이쁘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양이상의 화려한 이목구비의 페이스, 168의 큰 키에서 나오는 길쭉한 다리와 필라테스도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와 얇은 발목.



가느다란 허리와 그와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풍만한 골반라인은 은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거기에 탄탄한 11자 복근과 수줍게 보이는 타원형의 배꼽까지.



비키니 면적이 적은 탓에 그녀의 몸매가 더욱더 잘 드러난다.



“저어.., 아까부터 봤었는데요. 혹시 사진 찍는 사람 없으시면 제가 찍어드릴까요?”



오늘 워터파크에서 단연 돋보이는 은설. 그 때문일까? 혼자 사진을 찍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많다.



“흥! 저 일행 있거든요?”



역시나 성격은 어디가질 않는지 좋게 말하기보다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쳐내는 은설. 하지만 강하게 거부해서인지 남자들은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고 조용히 그녀 곁을 떠나갔다.



“이대리님~ 여기서 뭐해요? 이제 놀이기구 타러 가야죠!”



비치체어에서 체력을 충전하고 있는 현우에게 은설이 다가온다. 드디어 그놈의 사진을 다 찍었나 보다. 워터파크에 온지 정확히 2시간 만이었다.



“그래. 가자!”



현우 역시 오랜만에 칼리반베이에 와서인지 타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예전에는 시커먼 남자들과 왔다면 오늘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은설과 함께였다.



두 사람은 워터파크를 돌며 아쿠아루프, 튜브라이드 등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 둥둥



“하아...”



나른하다. 머리 위로는 쏟아지는 태양이, 튜브 아래로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철썩철썩 물결이 흔들리는 파도풀에 몸을 맡기니 천국이 따로 없다.



그때



“꺄아악!”



앞에 있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긴장을 푼 탓에 잊고 있었지만 파도풀은 정기적으로 대형 인공 파도를 만들어낸다.



“이...이대리님. 꺄아아~”



긴장을 놓고 있던 건 옆에 있던 은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가오는 높은 파도에 놀라 자신에게 안긴다.



- 철썩



- 꼬르륵



파도에 높게 위로 올라갔던 아래도 떨어지며, 머리부터 물속에 처박힌다. [체력] 4. 평범 이하 현우의 운동신경으로는 당연하게도 균형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푸하아!”



“콜록콜록”



오히려 은설 혼자였다면, 잔뜩 물을 먹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연신 기침을 하며, 삼켰던 물을 토해낸다. 그리고



“꺄아악!”



은설은 자신의 상체가 허전함을 느낀다. 누군가 볼까 황급히 두 손을 엑스자로 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은설.



‘어...어딧지?’



주변을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자신의 파란색의 비키니 상의가 현우의 손에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이...이대리님... 빨리... 그거 주세요!”



당황스러움과 현우에 대한 분노, 부끄러움.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비키니 상의를 달라고 요구한다.



‘어?’



파도에 휩쓸리며 자신도 모르게 은설의 비키니 끈을 당긴 듯 했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현우는 나비모양의 위태로운 매듭이 이런 사고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몸매를 자랑한다고 업사이드다운 비키니? 상의를 뒤집어 입은 것도 은설에게는 화근이었다. 덕분에 너무나도 손쉽게 현우에 손에 의해 풀려버린 비키니 상의.



“흐흐흐...”



야릇한 비키니를 입고 있을 때도 충분히 섹시했지만, 손 안쪽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자 아랫도리가 빳빳해진다.



은설 특유의 도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불안함에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도 꽤나 볼만했다. 확실히 그녀는 괴롭히는 맛이 있다.



“뭘...멍하니 있어요. 이대리님! 빨..빨리 줘요!”



- 웅성웅성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제는 얼굴은 물론 목 아래까지 수치심에 빨갛게 달아오른 은설.



‘그냥은 못주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터. 현우는 음흉하게 웃으며 손에 든 그녀의 파란 비키니 상의를 약 올리듯 흔들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