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최소 1에서 최대 10까지. 업무 시스템은 직원들의 능력을 마치 게임의 스텟처럼 구현시켜 놓았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우는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의 수치가 꽤나, 아니 매우 객관적이며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면서 3이었던 [체력]을 4로 올리는 것과, 5였던 [정력]을 6으로 올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정 중앙에 5를 기준 값으로 두고 그 위로는 ‘높음’, 아래는 ‘낮음’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3에서 4로 [체력]의 변화는 고작 어깨 결림이 해소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기준 값인 5를 넘어 [정력]을 올렸을 때, 그 변화는 엄청났다. 크기는 물론 몇 번이나 사정해도 죽지 않는 엄청난 지속력까지 얻게 되었다.
[매력]도 마찬가지다. 가장 처음 업무시스템으로 공략했던 김지영의 [매력]은 5. 그녀는 평범녀 자체였다. 못생기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그러나 5를 넘어가는 순간, 서진아, 은설, 김혜리처럼 어떤 남자가 보아도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결국 핵심은 기준 값인 5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였다. 기준 값 아래에서의 능력치 상승은 엄청난 변화가 없으며, 5를 초과하는 순간부터 기적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1이라도 높은 체력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용자 이현우]
[등급 : 중급 관리자]
[체력 : 4/10] [매력 : 3/10] [정력 : 8/10] [통솔 : 5/10]
맨 처음 받은 포인트를 아무생각 없이 체력에 투자한 현우. 덕분에 미세하지만 [매력]보다 한 단계가 높아졌다. 8까지 단숨에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최현민보다 더 강해지겠지.’
[체력]을 올린다면 어디 가서 피지컬로 쉽게 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최현민에게 허탈하게 멱살을 잡혀 대롱대롱 매달일 일도 없다.
‘아 근데 [매력]도 아까운데...’
[매력] 사람을 끌어드리는 힘. 초라한 자신의 [매력]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까지 받았던 무관심과 괄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같은 일을 해도 이병주 같은 매력적인 놈들이 더 주목받는 것이고, 똑같은 말을 해도 평판이나 호감이 완전히 달랐다.
묵묵히 일을 한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수고했다. 고생했다. 챙겨주긴 커녕 더욱 업무만 늘어났다. 그 비참한 현실이 현우는 억울했다.
7까지만 올려도 뺀질거리는 인상이긴 했지만 최현민 정도로 괜찮은 겉모습을 얻을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겠지.
‘아 근데... 지금와서 [매력]이 필요할까?’
이미 [매력] 8의 여자 4명을 거느리고 있는 현우. 물론 업무시스템 관리자 권한 덕분이었지만 현재로서 공략할 다른 여직원도 없는데 [매력]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그리고 뭔가 노잼이야...’
잘생긴 얼굴로 그냥 웃어주기만 하면 여자들은 눈에서 하트 뿅뿅 띄우며 매달릴 것이다. 공략이고 뭐고 얼굴이 그냥 치트키다.
과연 그게 재미있을까? 마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일 것이다. 편하긴 하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에 그 스릴을 느낄 순 없겠지.
‘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그리고 더 다양한 체위도 해 보고 싶고’
절대적인 근력이 부족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체위들도 있었다. 번쩍번쩍 여직원 들 수 있다면 야동에서만 봤던 체위들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래 돌고 돌아 [체력]. [체력]이 국력이지.’
긴 고민 끝에 현우는 [체력]을 찍기로 마음먹는다.
[체력] 위에 손가락을 올리려는 찰나
‘아 맞다. 이거 처음에는 꽤나 아플 수도?’
[정력]을 올릴 때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다. 이왕이면 침대에서 누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늘은 그만 끝내지. 그리고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
현우는 아니 지금은 혜리의 주인님인 그는 말을 마치고는 옥상을 빠져나간다.
“아응....으...”
그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혜리는 혼자서 어두운 옥상에 주저앉아 있었다. 풀어헤쳐진 블라우스가 바람에 마구 휘날리며 이제는 [매력]이 오른 탓에 B컵이 된 뽀얀 맨가슴을 드러냈다.
가랑이에서 흘러내린 정액이 말라붙어 허연 자국을 남길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옥상에서 사라진다.
“하윽!”
다리에 아직도 풀렸는지 그녀의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다. 흐트러진 머리와 정돈했지만 잔뜩 구겨진 옷차림. 덕분에 뭔가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되는 모습으로 그녀는 택시에 오른다.
* * *
“자 그럼...”
자취방 침대에 편안하게 누운 현우는 업무 시스템 [상태창]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체력]을 하나 올린다.
“읏!”
- 우두둑
평생을 바른 자세가 아닌 구부정한 자세로 살아온 탓에 굽어져 있던 허리가 단숨에 펴진다. 마치 도수치료를 받은 듯 고통보다는 개운한 기분이 느껴진다.
“뭐야?”
[체력 : 5/10] [매력 : 3/10] [정력 : 8/10] [통솔 : 5/10]
“별거 없잖아? 괜히 쫄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옥상에서 바로 올려도 됐을걸. 단숨에 꼿꼿하게 펴진 허리 덕분에 상쾌함을 만끽하던 현우는
- 타탁
[체력] 수치를 연타한다.
[체력 : 7/10] [매력 : 3/10] [정력 : 8/10] [통솔 : 5/10]
“——!”
“커억!”
숨이 턱 막힌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불덩이에서 타는 듯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기준 값인 5부터 상승할 때마다 큰 변화가 생긴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현우는 4에서 5로 올릴 때 별다른 통증이 없자 무식하게도 두 단계를 한꺼번에 올려버렸다.
그리고 그 멍청함의 대가는 엄청났다.
“크으윽!”
- 두두둑 뚜둑 뚜두둑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섬뜩하게 온몸의 관절들이 요동친다.
‘시...시바알...하...하나씩 천천히 올릴걸...’
현우는 자신의 안일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자신의 멍청함을 탓 할 수 밖에.
“끄윽...끅...”
연신 고통에 몸부림치던 현우는 곧 정신을 잡지 못하고 기절해버린다. [지능] 수치가 있었다면 좋았을걸... 현우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 * *
- 우우우웅 우우우웅
“으으...”
얼마나 지났을까? 현우는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의 진동에 잠에서 깨어난다.
“큭!”
손을 들어 폰을 잡으려고 했지만.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덜덜덜 고통에 손이 마구 떨린다.
“여...여보세요.”
간신히 폰을 들어 전화를 받는 현우.
- 이대리. 지금 뭐하고 있어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그래서 더욱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린다. 현우의 직속상사 최고은이었다.
“팀...팀장님?”
- 설마 지금 일어났다고 하려는 건 아니죠? 이대리.
단호한 원칙주의자. 워커홀릭의 정수. 최고은은 당연히 직장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근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녀의 반응으로 봐서 이미 출근시간 9시는 훨씬 지나버린 듯 하다.
“죄...죄송합니다. 팀장님 몸이 좋지 않아서요...”
꾀병이라고는 1도 없는 순수한 진실이었다. 지금 현우는 말을 할 때 입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 ...어디 안 좋아요?
얼음장 같던 최고은의 말투가 이내 누그러진다. 그녀 역시 현우의 목소리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다.
“온 몸이 뜨겁고... 몸살기운이 있네요. 죄송합니다. 팀장님...”
- 아... 아니에요. 제가 병가 처리 할 테니까 오늘은 쉬어요. 이대리님.
“감사합니다... 팀장님.”
- 혹시 집에 혼자 있어요?
“네. 회사 주변에서 자취하고 있습니다.”
- 그...그렇군요. 알겠어요. 쉬어요. 이대리.
- 뚝
뭔가 마지막에 당황한 듯한 최고은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뭐지?’
그러나 계속해서 온 몸이 쑤시는 탓에 현우는 기절하듯 다시 잠에 빠진다.
* * *
- 띵동 띵동
“크윽...뭐야 또...”
작은 창문 하나만 있는 현우의 자취방. 그 창문 역시 두꺼운 암막커튼을 쳐둔 탓에 방 안은 몇 시 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어두웠다.
- 띵동 띵동
“누...누구야...”
오전,,, 아니 오후인가? 아무튼 평일에 자신의 자취방에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현우는 집요하게 눌러대는 초인종 소리에 짜증이 난다.
‘택배기사인가?’
그렇다면 문 앞에 놓고 가면 될 것을.
“크윽...”
온 몸의 뼈가 다 부려진 것처럼 몸을 일으키는데 고통이 느껴진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힐 정도로 그 고통은 엄청났다.
- 끼익
“누구세요?”
약간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현우는 현관문을 연다.
“이...이대리 몸은 괜찮아요?”
그리고 그의 눈앞에 엄청나다 이외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스트가 보인다.
“어?”
한 올도 빠짐없이 정갈하게 빗어 넘겨 위로 묶은 머리와 두꺼운 검은색 뿔테안경. 무릎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스커트와 같은 색상의 자켓.
“팀장님?”
회사에 있어야 할 최고은이 현우의 눈앞에 있었다.
“어... 팀장님. 들어오세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현우는 그녀를 맞이한다. 혼자 사는 자취방이라서 일까? 최고은의 코끝에 진한 남자의 체취가 느껴진다.
‘여기가 이대리가 사는 곳...’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좀 누울게요. 죄송해요 팀장님.”
“아 그래요. 빨리 누워요 이대리.”
‘얼굴에 땀이 무슨,,,’
잠깐 움직인 것으로 그의 얼굴은 고통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현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괜히 최고은의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약은... 먹었어요?”
“아뇨... 그건 그렇고 팀장님. 집 주소는 어떻게 아신 거 에요?”
한 번도 최고은을 자취방에 데려오지 않았던 현우. 주소도 말한 적 없었는데 그녀는 어떻게 찾아왔을까?
“아 팀장들은 팀원들 개인정보를 다 볼 수 있어요. 이런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물...물론 그 전까지 이대리의 개인정보를 본 적은 없어요.”
“아 그렇군요...”
남자의 자취방에 단 둘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현우의 개인정보를 뒤졌다는 것이 민망했는지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그런 그렇고 밥도 안 먹었죠? 그럴 거 같아서 별거 아니지만 죽을 사왔어요. 이것 좀 먹어요,”
최고은은 아직 뜨거운 야채죽이 포장되어 있는 용기를 현우에게 내민다. 몸살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그녀는 해열제도 함께 사 왔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어제 침대에서 기절해버린 탓에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현우는 음식냄새가 나자 허기가 느껴진다.
“크읏...”
그러나 아직 느껴지는 통증에 숟가락을 들 힘도 없다.
“지금은 좀 힘들어서... 이따 괜찮아 지면 먹을게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을텐데...”
잠시 고민하던 최고은은
- 딸깍
직접 뚜껑을 열어 죽을 숟가락으로 뜬다.
“후우후우...”
“자 빨리 먹어요...”
부끄러워 얼굴이 달라 올랐지만, 현우가 걱정되어서인지 최고은은 호호 불어가며 죽을 직접 떠먹여준다.
그런 최고은의 의외의 모습에 현우는 살짝 놀랐다. 평소 사무실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굳이 사양하지 않고 그녀가 떠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는 현우. 덕분에 두 사람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그녀의 몸에서 진하지 않은 섬유유연제 향이 느껴진다.
‘이대리의 냄새...’
최고은 역시 현우의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하아..아아...”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여성호르몬이 뿜뿜 터져나오는 농밀하게 익은 여체는 그의 체취에 반응해 뜨겁게 달아오른다. 최고은은 자신도 모르게 자취방에서 뜨겁게 그와 나눴던 밤을 떠올린다.
‘부하직원 병문안까지 와서 무슨 생각인거야...’
- 꽈악
풍만한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현우가 흘려댄 땀 때문에 방안 가득히 찬 그의 체취가 자꾸만 그녀를 자극한다.
“팀장님? 팀장님?”
“어...아.. 저 불렀어요?”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살짝 상기된 두 볼. 죽을 받아먹던 현우도 그런 최고은의 상태를 알아챘는지 말없이 그녀를 응시한다.
“...”
“...”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잠시 가만히 있던 현우는 슬쩍 자신의 침대 쪽으로 그녀의 몸을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