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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 광고모델 (2)





“와 이게 되네.”



저번 달까지 아침 뉴스에서나 보던 차수빈이 지금 현우의 눈앞에 있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이야기했던, 관리자 무용론이 떠오른다. 실무에서 몇 년이나 손을 놓은 팀장이나 본부장들이 회사에서 하는 거라고는 보고서에 트집 잡기밖에 없다는 게 주된 그의 주장이었다.



‘정말 200퍼센트 공감 중이다.’



업무시스템의 권한인 근로계약 중 [업무협조]를 사용해 프리패스로 결재를 받아버리니 이렇게나 업무가 빠르게 진행된다.



평소였다면 보고서의 내용, 양식 등으로 온갖 트집을 잡아대며 몇 번이나 반려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수정 전 보고서가 낫다며, 실무자의 사기를 한없이 꺾어 놓았겠지.



- 웅성웅성



촬영을 위해 회사로 들어온 스텝들이 분주하게 카메라와 조명 등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이제는 출근’ 조연출과 앞으로의 촬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은설이 있었다.



현우의 강압으로 시작한 예능 촬영이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자신이 맡은 업무는 책임감 있게 진행하고 있는 그녀였다.



덕분에 광고모델 선정 계획 보고서가 승인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본격적인 촬영까지 진행된 것이리라.



“그럼 원준씨는 홍보팀에서, 수빈씨는 앞으로 예산팀에서 촬영하는 것으로 최종결정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담당자님.”



“네 맞습니다. 그렇게 촬영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일단 여기서는 함께 오프닝 따고 그 후부터는 각자 부서에서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디테일한 내용들을 조연출과 은설이 한참 조율하고 나서야 연출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다. 역시 어디든 뺑이치는 건 막내들이다. 연출에게 90도로 인사를 박는 막내 조연출을 보며, 현우는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자 사전 준비는 다 된거지? 바로 슛 들어가자고.”



뒤에 회사 로고가 보이는 로비에서 박원준과 차수빈 두 사람의 간단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스튜디오에서는 MC와 패널들이 중간중간 영상을 보면서 코멘트를 할 것이고, 현장에서는 이제 두 사람의 본격적인 관찰 예능이 시작될 것이다.



남자인 박원준은 현우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존재였지만, 차수빈 옆에 서 있는 탓에 자연히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듯한 이미지에 훤칠한 외모. 원래 단독으로 광고모델 계약을 하려 했던 박원준은 공공기관 홍보에는 정말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미 정부 부처의 여러 곳에서 광고를 하고 있다나 검증까지 된 확실한 모델이었으리라.



그리고 현우의 시선이 박원준 옆에서 오프닝 인터뷰를 따고 있는 차수빈에게로 향한다.



‘이쁘긴 이쁘네.’



기상캐스터. 아니 이제는 기상캐스터 출신 프리랜서 차수빈.



사실 현우가 별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듯 했지만, 관리자 권한을 얻기 전까지 그는 매일 아침마다 그녀의 일기예보를 의식처럼 꼬박꼬박 챙겨봤었다.



차수빈의 팬카페에 가입해 조공을 보내거나, 기상캐스터갤에 찬양글을 쓰는 진성빠는 아니지만, 드라마도 예능도 잘 보지 않는 현우에게 어떤 여배우나 아이돌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존재였다.



- 와씨... 오늘 의상 지리네.



다른 모든 기상캐스터들이 그러하겠지만 차수빈 역시 자신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볼륨감은 물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골반.



일기예보를 보던 쿵쾅이들이 여성을 상품화한다며 엉덩이에 넣은 뽕을 빼라고 SNS에 테러를 몇 차례 했을 정도로 미스코리아 출신의 차수빈의 몸매는 우월했다.



그 때문인지 항상



- 속옷라인이 드러나는 아찔한 의상의 기상캐스터

- 기상캐스터, 부적절 발언부터 노출까지…뜨거운 논란



이런 기레기들의 기사에 단골손님처럼 첨부사진으로 등장하고 했다.



그런 악플에 보통의 기상캐스터라면 조금은 자제할 법도 한데, 차수빈은 좀 달랐다.



오히려 정말 팬티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딱 달라붙은 얇은 원피스를 입거나, 명절에 속이 비치는 한복을 입는가 하면,



고의인지 알 순 없겠지만 셔츠 단추 사이가 벌어져 그 틈으로 브래지어가 살짝 노출되는 방송사고를 터트린 적도 있었다.



덕분에 쿵쾅이들의 거품 문 항의메일은 더 많아졌지만, 그와는 반대로 남성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사실 그 전에도 이미 기상캐스터 사이에서는 원탑이라고 추양 받았으니 팬심이 더욱 공고해진 것이리라.



포털에 차수빈 의상만 쳐도 수많은 여성 쇼핑몰이 검색되는데, 전부 그녀에게 의상 협찬을 한 업체들이었다. 남성들의 호감이 커질수록 매력적인 그녀처럼 옷을 입기를 원하는 여성들 역시 많아졌다는 방증이었다.



평범한 기상캐스터들과는 다른 차수빈의 매력이 확실하게 폭발한 것은 최근의 예능프로였다. 현직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특집의 예능 방송이었는데, 거기서 그녀가 한 발언이 화제가 됐었다.



- 결혼하면 속옷은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처음부터 꽤 파격적인 발언으로 시동을 걸더니, 점차 본심인지 예능인지 알 수 없지만 발언의 수위를 높여갔다.



MC와 패널들이 직장의 남자 선배와 카풀하는 여직원이 시트를 눕힌 채로 잠을 잔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던 중 난데없이,



- 그건 그 남자분을 배려해서 누운 거에요.

- 그게 뭘 배려한다는 건데요?

- 날 좋을 대로 하란거지. 무슨 배려겠어요.

- 그럼 수빈씨가 조수석에서 시트를 눕히고 있으면 마음대로 하란 뜻이네요?

- 그렇죠.

- 하하하. 수빈씨 이 발언 정말 괜찮은거죠?



라는 화끈한 입담으로



- 배우신분이다.

- 역시 차수빈

- 오히려 좋아

- 색기넘치는 모습 미쳤다.



다시 한번 남성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한동안 남초 커뮤니티에서 짤이 돌아다닐 정도로 제법 큰 이슈거리였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색기가 있어...’



차분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 기상캐스터답게 정확하고 또박또박한 발성이 더해지며, 이지적인 느낌까지 준다.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은 둘 다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본인 역시 같은 대학의 무용과 출신이었다.



굵게 웨이브를 넣은 탐스러운 긴 머리와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얼굴까지. 아직 그녀의 스탯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매력]이 9는 넘을 것이라고 현우는 확신했다.



그런데 묘하게 색기가 느껴진다. 좀 흘리는 그런 스타일인건가?



찾아보니 사생활까지 깔끔한지 그 흔한 스캔들 기사도 하나 없었다. 차수빈 같은 여자를 주변에서 그냥 둘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스캔들 의혹 기사조차 없다.



‘잘 숨긴 건지 정말 없었던 건지는 이제 할 수 있겠지.’



현우는 오프닝 촬영을 마치고 각자의 부서로 이동하는 두 그룹 중 한쪽을 뒤쫓는다. 물론 예산팀으로 가는 차수빈이 있는 일행이었다.



* * *



“이건 앞으로 회사에 출입하거나 식당에서 식사하실 때 필요한 수빈씨 신분증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담당자님.”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서주임라고 불러주세요.”



“네. 서주임님!”



“아 그리고 수빈씨 자리는 여기에요. 천천히 살펴보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임님.”



서진아는 이미 깨끗하게 청소된 자리에 차수빈을 안내한다.



‘하아...’



왜 하필이면 수많은 부서 중에 촬영부서가 자신의 부서인지, 그리고 왜 부담스러운 이 담당자는 자신이 되었는지 서진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녀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구김 없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과 차수빈을 찍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부담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가뜩이나 내년도 예산 시즌이라 업무도 많은데, 이제는 차수빈과 촬영팀까지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왜 그렇게 한숨이야? 이번 기회에 방송도 타고 좋은 거지.”



“이...이대리님! 대리님이 왜 여기 있어요?”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현우의 음성에 화들짝 놀란 서진아. 혹시나 카메라에 자신의 음성이 녹음될까 조용히 속삭인다.



“나? 이거 촬영하는 동안 예산팀에 파견 발령 받았어.”



“말...말도 안돼.”



서진아가 못 믿는 표정을 짓자 현우는 그녀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회사 사내망에는 떡 하니 이현우의 파견에 대한 인사발령지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큭큭큭...’



근로계약서가 남아도는 현우에게 [업무협조]를 사용해 잠시 예산팀으로 파견을 오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팀장인 최고은과 예산팀장, 인사팀장에게 파견 각각 [근로계약]을 사용한 뒤에, 현우는 손쉽게 서진아와 앞으로 2달간 차수빈이 머물 예산팀에 올 수 있었다.



차수빈의 공략을 위해서는 어찌 됐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자신에 대한 감정을 심리 메시지에 반영 시켜야 했다. 그래야 증폭이든 감소든 업무시스템으로 조작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원증도 받았겠다. 슬슬 업무시스템에 반영되려나.’



연신 업무시스템에서 차수빈이 업데이트될 것을 기다리며 새로 고침을 하던 현우는



“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차수빈의 상태를 업무시스템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용자 : 차수빈]

[나이 : 26] [키 :167] [체중 : 52]

[체력 : 8/10] [매력 : 10(+1)/10] [성욕 : 8/10] [멘탈 : 8/10]

[만족도 : 잠금] [호감도 : 잠금]

[성향 : 잠김]



[심리 메시지]

프리선언 후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욕구]

지방 촬영에 대한 [지루함]



일단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하지 않아도 단기이든 임시로든 상관없이 사원증과 출근만으로도 업무시스템에 등록된다는 현우의 추측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좋았어!’



지금부터 자신의 관리자 권한으로 차수빈의 [정보 확인]과 [심리 메시지] 조작이 가능했다. 그것으로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매력]이 10이라고?’



미스코리아 출신에, 기상캐스터 중 최고의 미모를 뽐내던 그녀였기에 역시나 매력은 지금까지 본 여직원들 중에서는 가장 높았다.



추가 보정 1이 붙었으니 타고난 [매력]은 9. 다행히 이번 업무지시에 정확히 부합하는 수치였다.



‘성형을 했나?’



- 힐끔



서진아 옆에 앉아있는 차수빈을 슬쩍 훑는 현우. TV에서 보는 모습이나 실물이나 전혀 차이가 없었다.



오밀조밀한, 그러면서도 잘 조화된 이목구비는 누가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확 눈에 띈다.



윤기가 흐르는 굵은 웨이브가 진 갈색머리가 가슴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와 있었고, 신입사원들이 입을법한 예전에 최고은이 항상 입던 단정한 정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옷빨은 역시 몸매가 다 한다고 했던가. 수수한 정장을 걸친 차수빈이었지만 볼륨있는 바스트와 한줌이 안되는 가녀린 허리, 풍만한 골반, 미끈한 각선미까지 빠지는 곳 없는 완벽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흠결 없이 완벽한 얼굴과 몸매. 왜 그녀의 [매력]이 10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체력], [멘탈]도 평균 이상이고... 근데 [성욕]이?’



맨 처음 관리자 권한으로 따 먹었던, 이제는 [여직원] 항목에서도 삭제시켜버린 평범녀 김지영의 [성욕]이 9였다. 잔뜩 발정 난 그녀보다는 낮았으나 지금까지 공략한 은설과 서진아, 최고은, 김혜리의 [성욕]이 모두 5 이하임을 감안했을 때는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일부러 노출 있는 옷을 입거나, 예능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게 전부 진심이었던가?’



차수빈의 높은 [성욕]은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들이 전부 가식이나 의도된 행동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처녀일 확률은 낮을 테니, [매력] 수치의 보정은 아무래도 은설과 같은 성형이 아닐까? 추측해보는 현우였다.



‘뭐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성형을 안 할 리가 없지.’



차수빈이 성형을 했건, 처녀가 아니던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면한 과제는 그녀를 완전히 공략하는 것, [업무지시]를 완수해 추가 포인트를 얻는 것이었다.



“으음...”



감정의 대상을 자신에게 전의 시키려면 [멘탈]을 1까지 낮춰야 하는데, 차수빈의 [멘탈]이 최고은급의 강철멘탈은 아니어도 꽤 높은 까닭에 당장에 감정 전의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심리 메시지]의 감정을 증폭하거나 감소시켜야 하는데,



[심리 메시지]

프리선언 후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욕구]

지방 촬영에 대한 [지루함]



카메라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차수빈의 모습을 보면서 현우는 어떻게 그녀를 공략할지 고심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