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광고모델 (5)
“어? 뭐야 어디 갔어?”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현우는 차수빈의 자리가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발견한다.
“그게 저도 아침에 들었는데, 수빈씨가 다른 부서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직접 피디님께 말씀하신 거 같아요.”
“뭐?”
현우보다 먼저 출근한 서진아는 먼저 소식을 접했는지 현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밤새 회사 앞 공원에서 현우와 야외섹스를 한 그녀의 얼굴은 수척했지만, 더 이상 촬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한결 편안한 표정이다.
- 꽈악
“어쭈 좋아?”
“흐응...그게 아니라...”
여기가 사무실이라는 사실도 잊었는지 현우는 딱 붙는 스커트 위로 드러나는 탐스러운 서진아의 엉덩이를 꽈악 움켜쥔다.
가뜩이나 차수빈 공략에 진전이 없어 짜증이 나는데, 그녀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짜증이 나는 현우였다.
당장 은설에게 전화를 건 현우는 차수빈이 서진아의 말처럼 정말 다른 부서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뭐? 조직혁신TF?”
놀랍게도 그녀는 현우의 원래 부서로 갔다고 한다.
왜 차수빈이 갑자기 조직혁신TF팀으로 갔는지 알 순 없었지만, 뭔가 점점 더 공략이 꼬이는 느낌이다.
“하아...”
결국 현우는 다시 [근로계약]을 사용해, 원래 자신의 부서로 복귀한다.
[인사발령]
대리 이현우, 예산부 파견 해제
조직혁신TF팀 복귀를 명함
그렇게 3주 남짓의 짧았던 예산팀에서의 파견을 끝낸 현우는 최고은이 팀장으로 있는 자신의 부서로 복귀한다.
“어? 이대리님. 여기서도 보내요?”
부랴부랴 자신의 부서로 돌아온 현우. 스텝들은 촬영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자리에는 어제까지 예산팀에서 같이 있었던 차수빈이 있었다.
“아 수빈씨. 예산팀에는 잠시 파견을 갔던 거라서, 오늘부로 다시 복귀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다시 잘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차수빈. 현우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한다. 하얗고 긴, 매끈하게 잘 관리된 손이었다.
‘그런데 왜?’
잘 있던 예산팀에서 왜 여기로 온 것인지 현우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고서 그 궁금증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출근’ 시청자 여러분. 차수빈입니다. 제가 오늘부터는 예산팀이 아니라 조직혁신TF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지만 매끈한 라인과 매력적인 볼륨감 덕분인지 차수빈은 마치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가슴까지 탐스럽게 흘러내린 굵은 웨이브의 머리카락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찰랑거리면서, 남직원들은 물론 여직원들의 시선까지 사로잡고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성욕]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분위기가 그런건지 묘한 색기가 느껴진다.
“부서이동은 제가 직접 제작진분들과 회사 측에 요청드렸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하시죠?”
그러나 안정된 발성과 정확한 발음. 거기에 맑은 목소리까지 더해지며, 섹시하면서도 이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차수빈이 기상캐스터들 중에서 왜 원탑이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바로 함께 근무하고 싶은 분이 생겨서입니다.”
차수빈이 가르친 곳에는 조직혁신TF팀의 리더. 팀장 최고은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최고은 팀장입니다.”
미리 제작진과 이야기가 됐는지 차수빈의 소개에 가볍게 인사를 하는 그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는 천하의 최고은도 긴장을 하는지 평소보다 더 경직된 얼굴이다. 그래서인지 각진 뿔테 안경 뒤로 무표정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러분. 저도 다른 직원분께 들었는데, 여기 최고은 팀장님은요. 최고속 승진 및 최연소 팀장에 빛나는 엄청난 분이세요. 그래서인지 꼭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멋지시죠?”
‘뭐야?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3주를 넘게 옆자리에서 지켜봤지만 현우는 차수빈이 저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이미지 관리 외에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거리감이 느껴진 것도 촬영에서 필요한 것 외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 때문이리라.
‘최고은 때문인가?’
현우야 천박하게 항문으로 가버리는 모습을 계속 본 탓에 그 존경심이 많이 희석되어있는 상태였지만, 여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회사 내에서 최고은 이상으로 빠른 승진과 성과를 내는 직원은 없었다.
하물며 같은 여자가 본다면, 관리자의 대부분이 남자인 이 회사에서 초고속으로 팀장이 된 그녀를 선망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 팀장님.”
“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걸 배워갔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차수빈은 조직혁신TF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갑자기 차수빈이 근무부서를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조연출의 표정은 밝았다. 분명 최고은의 미모 떄문이리라.
딱딱한 뿔테안경과 한 올도 남김없이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 굳게 다문 입술과 강렬한 눈빛에 많이 가려져 있음에도 성향 강화로 9가 된 [매력] 때문에 그녀는 차수빈 옆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흥행에 그런 최고은의 미모가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이미 카메라 한 대가 그녀를 전담하여 촬영하고 있었다.
“그럼 수빈씨. 본격적으로 촬영 시작할게요.”
그렇게 새로운 부서에서의 촬영이 시작된다.
* * *
“그럼 조직개편 관련 월례보고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회의 순서는...”
대회의장 단상에 선 차수빈은 차분하고 정확한 톤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항상 팀장인 최고은이 담당했었지만, 차수빈에게 어떤 업무를 줘야할까 고민하던 최고은은 그녀의 기상캐스터 경력을 살려 조직혁신TF팀의 행사에서 진행 업무를 맡겼다.
긴 시간을 들여 가르쳐줄 내용도 많지 않았고, 이미 일기예보를 매일같이 진행하던 차수빈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업무였다.
회사에서는 차수빈에게 적절한 업무를 부여해서 좋았고, 그녀 역시 나중에 기업체 행사를 뛸 때에 도움이 될만한 경험이었다.
‘역시 최고은.’
예산팀에서 단순 사무보조업무만 했던 차수빈이었는데, 최고은은 그녀의 경력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업무를 찾아냈다.
역시 완벽한 판단이었다고 차수빈의 발표를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 현우는 생각했다.
‘이제는 출근’ 제작진 역시 기존 출연자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신선한 장면을 딴 덕분일까? 굉장히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그렇게 차수빈은 꽤 중요한 역할까지 맡으며 한주 만에 완전히 조직혁신TF팀에 녹아들었다.
“수빈씨! 오늘 보고회 진행 너무 좋았어요.”
“정말요? 빈말 아니죠?”
“아니아니 정말이에요. 다들 수빈씨가 말하는 내내 초집중 상태였어요.”
“호호호 고마워요. 박주임님.”
행사가 끝나고 나이가 비슷한 탓인지 박혜수 주임과 허물없이 수다를 떠는 차수빈.
“팀장님.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수고 많았어요. 수빈씨.”
“감사해요... 팀장님”
박혜수 주임과 다른 팀원들, 그리고 팀장인 최고은까지 칭찬을 쏟아내자 쑥스러운지 차수빈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팀장님. 오늘 이렇게 잘 마무리 했는데...”
“아. 권대리님 다음은 제가! 제가 말할래요!”
권용찬 대리의 말을 끊은 박혜수 주임은
“오늘 회식을 제안합니다! 팀장님~ 수빈씨 오고 아직 회식 한번 안 했잖아요.”
역시 모두가 예상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럼 그럴까요? 수빈씨 스케줄은 괜찮겠어요?”
“네! 저도 좋아요. 지금 ‘이제는 출근’ 말고는 다른 일정이 없어서요.”
지난번 은설과 박원준, 촬영팀 전체 회식 때를 제외하고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사라졌던 그녀였는데, 오늘따라 어째서인지 흔쾌히 수락한다.
티비에서만 보던 기상캐스터였던 그녀의 시원시원한 수락에 팀원들은 모두 퇴근 후 회식에 대한 기대로 벌써 흥분상태였다.
차수빈을 공략 해야 하는 현우 역시 그녀와 함께 회식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 기회였다. 이 천금 같은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 * *
“자 우리 수빈씨를 위하여 건배~”
“건배애!”
현우가 저번 팀 워크샵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팀원들은 업무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원래 술고래들인지 회식만 했다 하면 뒤 없이 달려댄다.
- 탁
“크으...”
놀라운 건 차수빈 역시 빼지 않고 팀원들에 빠른 템포를 맞춘다는 것이었다. 빈 소주잔 그녀의 테이블 앞에 놓인다.
“수빈씨 잘 드시는데요? 저도 한잔 따라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권대리님~”
“뭘요. 저번 달까지 일기예보 항상 잘 듣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잘 마신다고?’
분명 은설에게 보고를 받았을 때는 적당히 빼다가 숙소로 돌아갔다고 했다. 카메라가 없어서? 아니면 촬영팀이 없어서? 현우는 살짝 달아오른 차수빈의 얼굴을 보며 생각을 해보지만 [심리 메시지]에도 변화는 없어 그녀의 속내를 알 순 없었다.
‘그건 그렇고 미스코리아는 미스코리아구나...’
이뻤다. 분명 촬영할 때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의 가식적인 미소는 접어두고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공략을 해서 자신의 배 아래서 앙앙거리게 만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일기예보를 하는 차수빈의 모습과 자신의 아래에 깔려 달뜬 신음을 뱉어내는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지면서 가랑이 사이에 급격하게 피가 쏠린다.
“저도 한잔 드릴께요. 수빈씨!”
“네에 감사합니다. 이대리님”
현우가 머릿속으로 자신을 겁탈하는 상상을 하고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수빈은 현우가 따라준 잔을 시원하게 마신다.
그녀의 취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기회를 노리는 현우의 음습한 눈빛이 짙어진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달리는 여자만큼이나 쉽게 따먹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무조건 오늘이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일단 인사불성이 된 차수빈을 덮치고 나면 공략이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하는 현우였다. 물론 그런 자신감은 정확하게 성감대를 찾아내는 섹스레이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깔려 밤새도록 절정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략이 되지 않겠는가?
“큭큭큭...”
“팀장니임~ 제가 한잔 드릴게요.”
팀원들에게 한 잔씩 잔을 받은 차수빈은 이제 최고은에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빈 잔을 채운다.
“아 고마워요. 수빈씨.”
워크샵에서도 팀원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 정신을 놓았던 최고은은 주량을 조절하기 위해 살짝 잔을 꺾어 테이블에 놓으려는데
“...”
말없이 자신의 잔에서 눈을 떼지 않는 차수빈의 집요함에 결국
‘하아...’
- 꿀꺽꿀꺽
“크읏...”
소주잔을 끝까지 비워낸다. 어째 팀장이 된 후부터 팀원일 때보다 더 술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그럼 수빈씨가 한잔 씩 다 드렸으니 이제 함께 건배할까요?”
“건배건배건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취기가 오른 팀원들과 차수빈의 텐션이 급격하게 치솟는다.
* * *
“하아...죽겠네...”
그래도 웬만한 회식자리에서 버틸 정도에 주량이 된다고 생각한 현우였지만, 딜레이 없이 빠르게 달리는 템포를 맞추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미 다른 팀원들은 정신을 놓아버린지 오래.
그러나 버텨야만 했다. 원래 여자를 따먹으려면 술자리에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차수빈을 오늘 따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현우는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는다.
‘어?’
잠시 현우가 체내에 알콜과 싸우는 사이 맞은편에 앉아있던 차수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발...”
- 벌떡
“으음... 어디가요? 이대리.”
현우는 자신을 붙잡은 권대리의 손길을 뿌리친 채 술집 밖으로 나온다. 화장실에 갔을지도 몰라 여자 화장실에 쪽을 살짝 귀를 가져다 대 보지만 안쪽에서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어디 간 거야?’
잔뜩 꽐라가 된 주제에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차수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술집을 기준으로 사방팔방 그녀를 찾아 헤매는 현우.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어느새 술기운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눈에 잘 띄는 외모라 멀리서도 찾을 수 있을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그때,
“찾았다!”
그때 저 멀리에서 보이는 웨이브 진 긴 머리의 실루엣. 차수빈이 분명했다.
“휴우...”
다행이었다. 어느 양아치에게 붙잡히기라도 했다면 그야말로 죽 쒀서 개준 꼴이 아니겠는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현우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차수빈은 혼자가 아니었다.
양팔로 꼬옥 옆사람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