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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온 몸의 피가 쏠려 나가는 것 같은 정액의 분출도 어느덧 잦아들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정액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자 진선이는 침과 정액으로 엉망이 된 자지를 입안에서 뱉어냈다. 그리고 자지 전체를 비질하듯 할짝거리며 핥았고 자지를 말끔히 정돈한 다음 말아쥔 손아귀에 힘을 주더니 마지막 남은 정액을 쥐어짜서 입안으로 넘겨버렸다.
"자기... 좋았어? 자기 대단해. 어제부터 그렇게 쌌는데도 또 이렇게 많이 쌌어. 자기 좆물에 질식하는 줄 알았어!"
"그래... 너무 좋았다. 나 죽는 줄 알았다."
죽을 것처럼 숨넘어가는 사정을 끝낸 나에게 진선이는 농염한 표정으로 나의 기분을 물어왔고, 나는 그녀에게 숨김없이 나의 감정을 얘기했다. 그리고 대답과 동시에 그녀를 일으켜 세워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런 연후 턱을 위로 살짝들어올린 다음 나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맞붙혔다. 내가 키스를 하자 진선이는 눈은 사르르 감았지만 반대로 입술을 살짝 벌렸다. 나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입안으로 혀를 진입시켰다. 진입을 성공한 혀끝에서는 좀전에 사정한 정액의 비릿한 맛이 느껴졌고, 그녀가 숨쉴 때마다 그 진한 정액의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서로의 혀가 얽혔고, 서로의 입안으로 상대방의 타액이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긴 입맞춤 뒤에 엉켜있던 서로의 혀가 떨어졌고 맞붙어있던 입술도 떨어졌다. 그리고 감겨있던 그녀의 눈도 살며시 열렸다.
입맞춤이 끝나자 진선이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꿇어앉아서 무릎아래에 있는 팬티를 위로 올려주었다. 그런 다음 사정 후 약간 죽어있는 자지를 다시금 입으로 머금더니 한번 쭉하고 빨아당기더니 이내 뱉어냈다. 그리고 뱉어낸 그놈에게 짧게 입맞춤하고 난 다음 팬티 속으로 집어넣어주었다.
"사실... 나도 오늘 급히 친구와 술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같이 못간다고 말하려고 왔는데..."
"그래... 난 그런줄도 모르고... 급히 일정이 잡힌 것을 원망했는데...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내일 저녁에 집에서 봐. 그때까지 참아줘."
나는 무릎 아래에 있던 팬티와 바지를 추스리고 있는 진선이에게 약속이 잡혔음을 얘기했고, 그녀는 사랑스런 눈길을 내게 보내며 아쉬움 담긴 대답을 했다.
"참! 경인이에게는 연락했어? 오늘 약속있다고..."
"아직 안했어. 나중에 하려고..."
"그럼, 내가 대신해줄께..."
"그래... 그래주라. 고마워. 그리고 조심해서 갔다와. 내일 보자."
"그래...!"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황급히 이사장실을 나오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진선은 내게, 경인이에게 자신이 대신 연락해줄 것을 말했고,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후 급히 이사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혜지가 기다리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혜지는 땅을 쳐다보며 그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로 건드리며 있었다.
"혜지야. 여기"
"....."
"혜지야."
그애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조수석 창을 내리며 혜지를 불렀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혜지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마침내 자신 앞에 서있는 차 속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는지 차로 가까이 다가왔고, 머리숙여 열려진 차창을 통해 운전석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살짝 지으며 인사해왔다.
"이거 선생님 차에요?"
"으응... 그래. 어서 타라."
"와!!! 차 좋다...! 호호호"
혜지는 조수석 문을 열고 차안으로 들어왔고 자신이 언제 슬픈 모습을 보였냐는듯이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좌석에 앉았다. 나는 혜지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애에게 안전벨트를 당겨 걸어주는 서비스를 했다. 안전벨트를 당길 때 나의 손이 순간적으로 혜지의 가슴을 스쳤다. 내 손이 자신의 가슴을 살짝 스치자 그애는 순간 움찔거렸다.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우리가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은 못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지금 라디오에서는 최고의 인기 그룹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알아요'가 들려오고있다. 혜지는 조수석에 앉아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노래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그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혜지의 모습을 운전하며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힐끔거림을 눈치챘는지. 때로는 내가 쳐다보는 순간 혜지도 고개를 내 쪽에 돌리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고,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발그레한 얼굴로 나에게 방긋 웃음을 선사하곤 했다. 그녀의 방긋 웃음에 무안해진 나는 황급히 앞 쪽으로 시선을 피해버렸고, 동시에 죄없는 가속페달만 쓸데없이 밟고 있었다.

혜지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동양 사람 답지않게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전형적인 서구적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교복 위로 비춰지는 모습이었지만, 날씬한 체형과 달리 잘록한 허리 위에 볼록하게 솟아있는 가슴은 그 크기를 능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볼륨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목구비 또한 반듯하고 뚜렷해서 지금 당장 미인 대회에 나간다고해도 1등은 따논 당상일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때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간직한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지만 그것도 혜지 앞에서는 예외였다. 그동안 그애를 지켜본 바로는 성격 또한 너무도 쾌활하고 밝아서 학교 내에서도 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모든 이들과 잘어울리는 붙임성이 많은 학생이었다. 성적 또한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조물주는 조금 공평했다. 이렇듯 어디하나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혜지도 약점은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가르치는 수학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교생 실습 오기전 4월 말에 치룬 중간고사에서 전체 성적은 전교 4등이었지만, 수학은 반에서 중간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는 왜이런지 모르겠어요. 수학만 잘하면 전교 1등 인데 시험만 보면 평균을 수학에서 까먹고 말아요!"
"......."
"선생님이 봐도 나 너무 특이하죠? 제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이상해요. 중학교 때도 그랬거든요!!!"
"그렇네. 왜 그렇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정말 저 자신도 모르겠어요. 이번 시험에서도 수학 공부만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달라지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으면 그동안 공부한게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거있죠."
정말 그랬다. 혜지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수학만 빼고 등수를 산출하면 전교 1등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번 수학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이처럼 혜지는 수학 점수를 그 모양으로 받고도 전교 4등이라는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특이한 아이였다.

어느새 해는 저물었다. 하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낮게 깔린 어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그것을 헤치며 계속해서 달려나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혜지는 아무런말도 하지않은채 입술을 다문 굳은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헤트라이트 불빛만 어둠을 뚫고 주변을 환히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차를 몰아간 곳은 한강고수부지 한남대교 바로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이었다. 우리보다 앞서왔는지. 그곳 주차장에는 카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라고 추정되는 몇 대의 차들이 여기저기 듬성듬성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헤치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곳을 발견했다. 주변을 살피며 내가 발견한 그 곳. 즉, 주차장 한 쪽 구석에 차를 멈췄고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차창을 약간 내린 다음 시동을 껐다. 내려진 차창 사이로는 강바람이 들어왔다. 시원하리라는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고, 차창으로 들어온 강바람은 따뜻했던 낮과는 달리 약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그래서 혜지쪽을 바라보니. 혜지는 조금 추웠던지 몸을 약간 웅크렸고, 그길로 나는 환기를 중단했으며 곧바로 내렸던 차창을 다시 올렸다.
그후 한동안 우리는 아무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수석으로부터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흑흑흑... 흐흐흐흑... 흑흑"
그래서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 돌렸다. 나와같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혜지가 흐느끼고 있는게 아닌가.
"혜지야! 니 와그라노? 속상한 일이라도 있나...?"
"훌쩍... 훌쩍... 흑흑흑... 훌쩍... 훌쩍..."
"아까부터 말은 안하고 울기만하니까...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너무 당황스럽다."
묵묵히 앉아 있는 줄 알았던 혜지의 울음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또한 한번 터진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흘러내렸다. 무에 그리 서러웠던지 연신 울어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혜지에게 우는 이유를 물어봤지만 혜지는 대답하지 않은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혜지야... 선생님에게... 얘길해야지... 이렇게 울기만하고 혼자서 속상해 하는건 몸에 안좋아. 선생님이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속시원히 말해줄 수 없겠나?"
오늘 하루종일 웃다가 울다가하는 혜지의 감정 기복에 나는 마음 속으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답답함을 빨리 해소시키려고 했고, 딴에는 위로랍시고 그녀에게 건강운운하며 말도 안되는 말을 건넸다.
"혜지야. 평소에 니 모습과 달리 오늘은 왜이프? 집에 안좋은 일 있나? 우리 예쁜 혜지가 이렇게 슬퍼할 일이 대체 뭔데?"
"흑흑....!!!"
"선생님이 니를 위해 할 수있는 일이라면 다할께. 내가 도울일은 없겠나? "
그러나 나는 나의 답답함을 그녀에게 그대로 들어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마음 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여러번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답답한 마음을 바깥으로 내색하지 않은채 차분한 목소리로 혜지에게 재차 물었다. 그제서야 혜지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훌쩍... 전... 선생님이... 훌쩍... 너무 미워요...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훌쩍"
"뭐? 내가... 밉다니...?! 그게 무슨 말이고? 선생님이 니한테 무슨 잘못한일 있나?"
"......."
혜지는 뜬금없이 나를 원망하는 말을 했다. 그말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그리고 언성이 높아지며 그녀를 다그쳤다. 나의 언성이 높아지자 그녀는 순간 움찔하며 다시 말문을 닫으려고 했다.
"아니...아니... 미안하다. 혜지야... 선생님이 화난게 아니라... 당황해서 그런거다... 다시는 화 안낼께... 그리고 니말 안끊을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계속얘기해봐라."
"훌쩍... 훌쩍... 선생님...!... 왜 그렇게... 그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아....!"
"전... 정말... 꿈에라도... 흑흑... 선생님이... 결혼했을 줄 몰랐어요... 어떻게 대학도 졸업하기전에... 결혼하실 수 있어요... 그것도... 이사장님 딸이랑.... 흑흑"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혜지의 그 말에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사장님이 선생님의 장모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전... 세상이 무너지는줄 알았어요... 그리고 교실로 들어왔는데...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않아서...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죠... 그래서... 반장에게 말해서... 체육 수업을 빠진채... 혼자 남은 교실에서 계속 울고 있었던 거에요... 울면서... 생각하니... 그렇게 일찍... 결혼한... 선생님이 점점 더 밉게 느껴졌어요... 흑흑흑... 난 몰라... 저는... 저는... 그런줄도... 모르고... 흑흑흑."
혜지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혜지는 손수건을 받아들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또 다시 우리는 일체의 대화을 중단한채 침묵으로 약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침내 말없이 흐느끼던 혜지는 조금 진정 되었는지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훌쩍... 선생님을 처음 본 순간... 저는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저는...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생님... 주변을 맴돌았고...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오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급기야... 오늘은... 내 맘을... 고백하려고... 다른 애들... 오기전에... 학교에 일찍 왔었고... 예상대로 선생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
대꾸도 하지않은채 혜지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울음을 그쳤는지 혜지는 손수건을 꼭 쥔 채 가끔씩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혼했다는... 선생님의 말에...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죠... 선생님. 나 어떡하면 좋아요? 머리에서는... 안된다... 안된다... 수 십 번을 되새기며... 다짐했는데... 그게... 이 가슴이... 이 가슴이... 뜻대로 되지 않아요. 선생님께... 고백해서... 내 마음을 받아들여 주면...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이제는 외롭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으니... 그래서 속상해서 울었어요."
"......."
혜지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또 다시 죄없는 가슴을 움켜쥐었고 두 눈을 치켜 떴다가 찡그렸다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울먹이며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어떤 위로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너무... 외로웠어요... 저에겐... 자상한 아빠처럼... 제가 투정을 부리면... 언제나 웃으면서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어요... 선생님의 든든하고 자상한 모습에... 저는 그 사람이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선생님과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선생님을... 그렇게... 일찍... 가로채간... 부인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어요..."
이제 혜지는 격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빠같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서... 나의 외로움을... 모두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었어요... 엉엉엉... 날 남겨두고... 하늘 나라에 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흐흑흑!!!"
"흐...음!!!"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늘 나라로 가신 엄마 라니? 분명 혜지에게는 부모님이 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혜지에게 물었다.
"넌 분명 부모님이 계신다고 하지않았나?"
"훌쩍... 네... 그랬어요... 저에겐... 분명 부모님이 있어요... 인정하긴 싫지만..."
"그런데... 어떻게...?"
"원수같은... 아빠가 있긴해요...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친 딸인 우리들을 마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그런... 파렴치한 아빠가 있긴 해요...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애정도... 남아있지 않은... 나를 낳아준... 그런 아빠가 있어요..."
"......."
"그런 아빠에게 헌신하고... 순종했던 엄마는... 2년 전 겨울 어느 날... 암으로 돌아가셨죠... 아마 엄마가 암에 걸린 이유도... 아빠 때문일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고?"
"흑흑... 제겐 저하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언니가 하나 있어요... 아빠는 그 언니를 부잣집에... 억지로 시집보내버렸고... 거기서 너무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어요... 형부는 처음에... 언니의 미모에 반했던지... 언니에게 갖은 정성을 다했대요...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이 180도 달라졌대요... 언니의 모든 생활을 통제했고... 어쩌다 가끔씩 집에 들어와서는... 갖은 트집을 잡아... 언니를 학대했고... 심지어 언니에게 손찌검도 했대요... 처음에는 그런줄 몰랐던 엄마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날도 형부에게... 얻어터져서... 병원에 입원한... 언니에게서 모든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그 얘기를 듣게된 엄마는... 불행한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결혼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죠... 모든 불행의 원인 제공자인 아빠에게는 내색도 못한채... 바보 같이 모든 불행이... 자기탓이라 한탄하며... 속으로... 가슴앓이했고... 그게 모두 병이되어... 급기야... 암이되었던거 같아요... 흑흑흑..."
"흐흑... 흐으흑... 흑흑흑..."
혜지는 또다시 엄마 생각에 설움이 북받쳤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뛰어들다시피 내 품에 안기며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달려든 그녀를 엉겹결에 안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못한채 등만 토닥여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그렇게 모였는지 제법 많은 차들이 들어와 있었다.
"엉엉엉... 그사람은 아빠도 아니에요... 짐승이에요... 악마에요... 엄마가 돌아가시자... 1년도 안돼서... 기다렸다는듯이... 언니 또래의 젊은 여자를 데려와서는... 저에게 새엄마라며 소개하지 뭐에요... 저에게 그 여자를 엄마로 받아... 달라는 말을 했어요... 그순간... 저는 치를 떨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빠에요... 흑흑..."
그 장면에서 혜지는 아빠에게 묻어나는 증오 만큼 나의 가슴에 머리를 쿵쿵 찧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라는 명칭은 어느새 사무친 원망만큼 '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에게... 그럴 수 없다고... 당신이 사람이냐고... 엄마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단호하게 얘기했죠...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나에게 손찌검을 하는 거에요... 저는 그 길로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 혼자된 언니에게 갔죠... 내 말을 들은 언니도... 저만큼 울었어요... 언니는 곧바로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더이상 우리 자매를 찾지말라는 통보를 했고... 그 길로 자기 집 근처... 자그마한 아파트를 얻어줬죠... 거기서 저는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어요... 하늘 나라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엉엉엉... 흑흑흑... 나 어떡해..."
그동안 감추어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진듯. 혜지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내 품을 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저... 너무 외로웠어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난파된 사람처럼... 무서웠어요... 흐흐흑... 이런 나를 무인도에서 구해내줄... 사람이 선생님인줄 알았어요... 흑흑..."
시작한 혜지의 하소연은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의 양만큼 계속되었다.
"정말... 그러던 어느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나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희망을 발견했어요... 처음 본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죠... 뛰는 가슴을... 아무리 진정시키려고 해도 더이상 진정시킬 수 없었고... 급기야...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사람을 찾았던 거죠... 어느새 그는... 내 마음 모두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런 나의 마음은 매일... 아니... 매시간, 매초, 매순간 그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죠..."
"......."
"매일 학교에 오면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마냥 들떠있었고, 그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온 밤을 지새웠고... 학교에서 그를 본 순간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만족감을 느꼈어요... 우울하던 내 모습도 그 사람 앞에서 만큼은 밝아졌고, 내게 보내는 그 사람의 미소 또한 지금까지의 외로움을 한방에 날려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의 허락도 받지않은채... 마음 속으로 동경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마침내... 동경하던 나의 마음은...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그 사람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말에요..."
"......."
"그런데...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더이상...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니... 선생님이... 미워...!"
혜지는 나를 원망하는 말을 끝으로 길고 긴 자신에 관한 얘기를 모두 쏟아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다듣고는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함께 다시 꾸고 싶지않은 악몽과 같은 나날을 지내온 혜지가 너무도 불쌍해서 울고싶었지만, 대놓고 울지는 못했지만. 눈물 한방울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른 손으로 눈물을 감춘후 나는 혜지를 품에서 떼어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예쁜 눈을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혜지야. 그랬었구나... 그런 외로움에도 항상 밝은 모습을 간직한 니가 너무나 대견하다... 힘내라... 이제부터는 좋은 일만 생길거야. 그럴거야. 희망을 가져라."
"그렇지만... 그렇지만... 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 어떡하면 좋아요?"
"내가 어떻게 할까?"
"......."
"너의 애인은 되어주진 못하겠지만...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어떡할까?"
"그러면 제 오빠가 돼주세요... 나를 친동생 처럼 보살펴주는... 그런... 그런... 친오빠가 되어주세요..."
"그렇나. 내가... 그러면 되겠나?"
"그래요... 전 더이상은 바라지 않을께요... 나를 지배하며... 저의 과거를 암흑으로 물들였던... 아빠에 대한 씻기 힘든 원망에서 제가 빠져나올 수 있게 제 오빠가 돼주세요...!!!"
"그럴께. 그렇게 하자... 그동안 많이 외로웠지? 오빠하고 한번 불러봐..."
"고마워요. 선생님... 아니... 오빠..."
"이젠 더이상 울지말고... 예전 같이 웃는 혜지의 모습을 보여줘."
"네... 아니... 응... 노력할께... 오빠!!!"
나는 혜지에게 애인은 못되어주지만 대신 오빠가 되어주겠노라고 약속했고, 그녀는 나의 허락에 고마워했다.
"혜지야."
"네!"
시계를 보니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집이 어디고? 벌써 시간이 8시다. 저녁은 먹었나?"
"어머... 벌써... 그렇네! 응... 오빠... 난 보충수업 받기전에 먹었는데... 오빤 안먹었어?"
"응!!!"
"저런!!! 미안해서 어쩌나..."
"또 그란다... 앞으로 오빠에게는 미안하다는 소리하지 마라... 그리고 난 괜찮다... 이따 집에서 먹을 께... 알겠제."
"그래도...!!!"
"괜찮다니까. 한끼 쯤은 괜찮다... 내일 일찍 학교도 가야하니까... 우리 못한 얘기는 내일 학교에서 하도록 하자."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혜지는 계속해서 미안해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혜지를 안심시켰다. 그말과 함께 나는 자동차에 시동 걸었다. 그런 다음 곧장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왔고, 혜지가 안내하는대로 그녀가 살고있다는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혜지야. 오빠간다. 자주 들릴 테니까 혼자산다고 밥 굶고 아무렇게나 생활하면 혼난다, 알았제."
"알았어... 오빠... 헤헤!!!"
"그래 우리 혜지는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그렇게 활짝 웃어라... 힘내고... 이제 오빠가 힘이 되어줄께."
"고마워... 오빠... 사고 안나게 조심해서 가!!!"
"그래 오빠 간다... 내일보자."
주차장을 나와서 10분 쯤 가니 혜지가 산다는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엘리베이트 앞 까지 바래다준 후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웃음지으며 나를 배웅하는 혜지는 두 눈이 상당히 부어있었다.

"군오빠... 힘들었지?"
"하루종일 잘있었나? 몸은 불편한데 없고?"
"응... 없어... 저녁은 먹었어? 안먹었으면 지금 밥상 차릴께."
현관에 들어서니 경인이가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하루종일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경인이는 물만난 고기처럼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식사유무를 물어왔다.
"나 무척 배고프거든... 빨리 밥 좀 줘."
"알았어... 밥 차릴동안 얼른 씻고 와...!!!"


"선군씨!!!"
"누가 날... 부르지??"
"저 여기... 여기에요."
"김선경... 선..생..님..!!"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와 차가 있는 주차장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대로변에서 들려오는 낯선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촌스럽지는 않지만 짙은 화장을 한 김선경 선생이 손짖과 더불어 밝게 웃음띤 얼굴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 백제 미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했던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 눈앞에 비춰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4글자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이 말이 가장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호호... 여기에요..."
"어떻게 여기에...??"
어리둥절한 내 모습과는 달리 선경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놀란 내 모습을 보고 재밌다는듯 장난어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선경의 그런 모습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날리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호호호호... 많이 놀라셨나요?"
"네... 허... 이것 참... 오랜만이네요. 김선경 선생님. 이런데서 뵙게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쩜! 제 이름 기억하고 계시네요!!"
"아...! 네...! 우리 경인이 담당 의사선생님인데...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죠... 선생님. 잘지내고 계셨습니까?"
"예. 보시다시피 저는 잘지내고 있어요. 선군씨도 그동안 잘 지냈나요? 경인씨는 병원에서 가끔씩 보는데...!!"
"네! 저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교생 실습도 끝났고, 이제 학창 시절을 마무리짓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왠일로 학교에 오셨습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비록 교정이었지만 차들의 통행이 빈번한 길 가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빵...빵..."
"어머나...!!!"
"선생님 여기로...!!!"
그때 갑자기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선경은 내 쪽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 얼떨결에 나는 인도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몸을 피하는 선경을 끌어당겨 안았다.
비록 부지불식 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차가 지나가고 난 후.
정신을 수습하고보니. 선경은 내 품에 꼭안겨 있었고,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선경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멋쩍은 표정으로 떨어졌고, 떨어지는 선경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선군씨...!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아뇨... 괜찮습니다...!!"
급히 정신을 수습한 것인지. 선경은 나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나는 그녀에게 괘념치말라는 말을 했고, 속으로는 교정에서 그렇게 급히 차를 몬 사람을 욕하고 있었다.
"선군씨."
"예?"
"제가 오늘 학교에 온 이유는 바로. 선군씨를 만나기 위해 왔어요. 왜냐하면...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거든요."
"......."
"학교에 와서... 전에 선군씨가 가르쳐 준 삐삐로 연락드릴려고 했는데...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여서 선군씨를 불렀던 거에요."
"그렇습니까."
"멀리서인데도 선군씨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띠였어요. 큰 키에 우람한 체구가 말이에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랬습니까? 제 체격이 좀 큰 편이죠."
금방 화색을 띤 선경은 용무가 있어서 나를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선군씨.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그런데 선경은 갑자기 간절함이 짙게 배어있는 표정을 짓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부탁이 있음을 얘기했다.
'무슨 부탁이기에 이렇게 두서없이 부탁을 하는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선경의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성 앞에서는 표정을 잘감추지 못하는 나는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미안해요... 제가 밑도 끝도 없이... 실수를 했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나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던지. 선경은 사과를 했다.
"선군씨... 시간있으세요... 우리 이럴게 아니라...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을래요? 제가 부탁할 것도 있고 해서요."
"예. 그러죠. 차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뇨... 전 아직 차가 없어요. 아직 운전 면허를 못땄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지 두 발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답니다. 호호호"
"그렇습니까? 잘됐네요. 그러면 제 차로 가시죠."
"어머. 선군씨는 차 있으세요?"
"네... 장모님께서 뽑아주셨어요. 요즘 그걸타고 등하교를 하고있습니다."
"와! 멋져요. 나중에 선군씨께 운전 좀 가르쳐달라고 해야겠네! 나중에 운전 좀 가르쳐 주세요... 헤헤!!"
"네... 알겠습니다...!"
"와! 좋아라!! 호호호호"
"선생님! 그럼 절 따라 오세요."
나는 선경의 부탁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의 저녁 식사 제의를 승낙했고, 차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선경은 엷은 미소와 함께 그 자리에 몸을 실었다. 곧바로 우리는 그녀가 자주찾는다는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선경의 말처럼 그곳은 그녀가 자주 찾는 곳 다웠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알아보았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부터 우리를 담당해야할 웨이터가 우리를 룸으로 안내했고 우리는 그를따라 그가 안내한 룸으로 들어갔다. 선경은 평소에 즐겨 먹던 것이었는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 웨이터가 미리 가져다 준 와인으로 입을 적시고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들어와서 잘 못느끼고 있었지만.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고, 종업원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지 대부분 표정이 밝았다. 특히 웨이트의 시중드는 품새가 여간 세련된게 아니었다.
30분쯤 담소를 나누며 느긋하게 기다렸더니.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가져온 음식들은 양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아들었으며 나의 입맛을 자극하는 훌륭한 것이었다.
'이 정도의 음식이면 음식값이 상당히 비쌀 것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하지만 좀 비싸겠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연속적으로 들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그녀의 지도(?)하에 다먹었다. 이내 후식이 들어왔고 우리는 후식을 먹으며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먹을만 해요? 저는 가끔씩 여기에 와서 이걸 먹거든요."
"예. 덕분에 난생 처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봅니다. 너무 훌륭한 맛이에요. 입 안에서 살살 녹아요!!"
"먹을만 했다니 다행이네요... 호호호...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어요."
선경은 나에게 음식 맛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 대답에 그녀는 기뻐했다.
"저 번부터 뵙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드렸어요...!!"
"그런데, 아까 제게 부탁하신다는 얘기가 뭡니까?"
빨간 립스틱의 섹시하고 도톰한 입술이 열렸다. 선경은 카랑카랑하고 똑부러지는 말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궁금증을 참지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자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부탁하려는 것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예... 그건 다른게 아니라. 제가 이번에 박사 논문을 쓰거든요."
"......."
"그런데 논문 내용 중에 통계 자료를 정리해서 실어야 될 부분이 있어서요. 이게 분량도 많고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제가...?"
"지난 번 스승의 날에 송진선 선생님께 갔을 때, 선생님께 선군씨가 그쪽 계통이 전공이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선군씨 전공이 수학이 맞죠?"
"예. 맞습니다."
"그래서 선군씨가 통계 자료를 정리하는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그게... 너무 갑자기 물어와서...!!"
"미안해요... 너무 갑작스런 부탁이라 당황했죠? 진작에 찾아뵙고 도움을 청했어야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병원일이 너무 바빠서 그랬어요... 이해해주세요...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는 메뉴얼을 드릴께요. 메뉴얼만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거에요... 안되나요? "
"아뇨.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밥값은 해야죠."
"호호호... 와!!! 너무 고마워요..."
선경의 부탁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던게 사실이었다. 내가 자신의 부탁에 아무말이 없자 선경은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는 나의 말에 장미꽃 같은 화사한 웃음을 띠며 다시 살아났다.
"근데... 이게 하루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서..."
"분량이 꽤 많은가 보죠?"
"네... 천 명 쯤 되는 사람을 표본으로해서 조사한 자료에요... 이것을 메뉴얼대로 분류하고 분류를 토대로 수치화해야되거든요."
"그렇게나 많아요?"
"네... 선군씨...하실 수 있겠죠?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죠?"
"........"
분량이 많다는 자신의 말에 다시금 내가 말이 없자 그녀는. 또다시 내가 거절하면 어쩌나하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는듯 가끔씩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도와주시면... 사례는 후하게 드릴께요... 제발요...!!!"
"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호호호... 고마워요. 아휴...!! 거절하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 많이했는데... 이렇게 흔쾌히 승낙해주시니... 너무 너무 다행이고 너무 너무 고마워요... 일은 내일부터 하시면 될거에요... 내일 저희 병원에 오실 수 있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학교 수업 마치고 갈께요."
최종적으로 나의 승낙이 떨어지자. 시무룩하던 선경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고 이후 그녀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되찾았으며 시종일관 싱글거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곳에 온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우리... 나갈까요?"
"네... 그렇게 하죠... 오늘 식사 대접 잘받았습니다."
선경은 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나가자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랬더니 선경은 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스토랑 출구쪽으로 걸어갔고, 나도 그녀를 따라 그곳을 벗어났다. 좀 전에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계산이 끝냈는지 선경은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유유히 그곳을 나왔다.
"선군씨. 뭐 먹고 싶은게 없어요?"
"예??"
"시간되세요?"
"왜요?"
"별일없으면... 우리 술 한잔 하러가요?"
레스토랑을 나와 발걸음을 주차장으로 옮기려하자 선경은 나를 불러세웠고 그냥가기 섭섭했던지 술 마실 것을 제안했다.
"네. 저는 괜찮은데. 근데 선생님은 일찍 들어가야 안됩니까? 남편이랑 애들이 기다릴 텐데요?"
"호호호... 저는 괜찮아요... 저 아직 결혼 안했어요."
"네???"
"아하... 저를 아줌마로 봤구나!! 선군씨... 제가 아줌마 같아 보여요? 제가 그렇게 늙게 보여요?"
"아뇨... 제가 엉겁결에 실수를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호호호호... 아니에요... 당황하지 말아요. 제가 장난 한 번 해본 거에요."
"그래도. 저는 당연히 결혼하신줄 알고... 선생님같이 아름다운 분을 남자들이 그냥 놓아두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호호호... 좋아라... 선군씨 눈에도 제가 그렇게 예뻐요??"
"네...! 제가 본 여성들 중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예뻐요."
"와!!! 선군씨 뭐든지 말만해요. 무슨 술 좋아하세요? 내가 한턱 쏠께요... 빈말이래도... 저 기분 너무 좋아요... 그런 칭찬 처음이에요... 호호호호"
"하하하... 아니에요. 모두 진심에서 하는 소리에요. 저는 여성분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 못했요... 저는 아무 술이나 다 좋아합니다."
"그럼... 우리 소주 마시러가요."
"좋습니다."
"호호호호... 오랜만에 편안한 분위기에는 술을 마실 수 있겠네!!! 선군씨... 우리 어서 가요."
우린 주차장에 차를 그대로 둔 채 레스토랑에서 가까운 술집으로 걸어갔고, 그곳에서 한잔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느끼질 못했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술잔을 나누었다.
선경은 술마시러 올 때 말한 것 처럼 나름 편안했던지 제법 많은 술을 마셨다. 급기야 조금씩 눈동자가 풀어지면서 자신의 인내와는 무관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화사한 아름다움의 도도한 이미지는 술기운에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선경에게서 한결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선군씨...!"
"예!!"
"나... 오늘 기분 무지... 좋아... 간만에... 이렇게 취하도록... 마시는 것 같아...!"
"저도 그래요...!!"
이제 선경은 나에게 뒤끝을 흐리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연장자인 그녀가 반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선경은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터치하기도 했고 장난스럽게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호호호... 선군씨! 이제부터... 우리... 누나 동생하면 안돼?"
"저야 좋죠. 이렇게 예쁜 누님을 언제 가질 수 있겠어요."
"야... 좋아라... 오늘은 신나는 일만 생기네...! 그럼 지금부터... 한선군!!"
"예!!!"
"목소리 작다... 다시... 한선군!!"
남자 형제들 밖에 없던 나는. 어릴 때부터 누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 동생하자는 그녀의 제안에 망설임없이 동조를 했다. 그녀 또한 나의 승낙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너무도 좋아라 했고 급기야 주변에 누가있는지도 신경쓰지 않은채 나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누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그녀의 행동이나 말을 제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는 낮은 자세를 취하였다.
"누님... 많이 취했구나?"
"그래 이 자샤... 이 누나 좀 취했다... 좀 취하면 안돼...!!"
"아닙니다. 누님... 누님 곁에는 제가 있으니, 걱정마시고 계속해서 마시도록 하세요. 오늘 저녁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이제는 서로 격없이 농담도 주고받으며 술을 마셨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인식하지 못한채 우리는 많은 술을 마셨다.
"누님... 많이 취하는데... 우리 그만 일어나자... 집에 가야지... 더 취하면 힘들어져...!"
주고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인 결과 선경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해버렸다. 그녀보다는 덜했지만 나도 상당히 취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제 그만 마실 것을 얘기했지만 그녀는 술상 위에 엎어진채 꼼짝을 안했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선경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축늘어진 그녀를 일으켜 세우기는 쉽지가 않았다.
"누나야... 어서 일어나봐라... 이제 가야지... 어서...!!"
그래도 나는 억지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축늘어진 선경을 부축하며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즉 우리가 저녁식사한 레스토랑 건물 앞까지 그녀를 데리고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업이 끝난 것인지. 건물은 굳게 닫혀있었고, 바깥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꼼짝도 않은채 닫혀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선경이도 추스릴겸 건물앞 벤취에 그녀를 내려놓고는 어떻게해야할지 궁리를 했다.
'이렇게 인사불성이 된 여자를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벤취에 널부러진 선경을 다시 일으켜 세운 다음. 레스토랑 건물 바로 앞에 네온사인 번쩍이는 여관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경인아...!!"
"군오빠... 왜 이렇게 늦어? 전화도 없이. 무슨 일 있는 거야?"
여관에 도착하여 선경을 침대 위에 널브러뜨려 놓고는 집에서 나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고 있을 경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경인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한참을 걱정하고 기다렸는지 평상시 차분하고 다소곳한 경인이의 목소리와는 사뭇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별일은 없어... 걱정하지마라... 그런데... 나 오늘 못들어가겠다...!!"
"아니. 왜??"
집에 못들어간다는 나의 말에 경인이는 깜짝 놀랐고, 깜짝 놀란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화기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응... 오늘... 재석이 알지? 일전에 늦게 군에 갔던 내 친구 말야."
"그래 알아... 근데?"
"재석이가... 오늘 첫휴가를 받아왔거든... 그런데 인마가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지 뭐냐. 그래서 친구들과 술판이 벌어졌고 나도 꽤 많이 마셨다... 지금 도저히 차를 몰고 가기 힘들어서. 애들이랑 여관에 왔다. 그래서 얘들이랑 여관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갈께."
"그래?!... 할 수 없지 뭐... 몸 생각해서 술 좀 적당히 먹어...!!! 조심해... 오빠!!!"
"알았다... 내 걱정하지 말고... 일찍 자라."
나를 걱정하는 경인이에겐 미안했지만, 그녀에게는 거짓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선경에게 갔다. 그리고 술기운에 답답해할 것 같아서 그녀의 윗 옷을 벗겨서 옷걸이에 걸었다.
'그나저나 침대에서 같이 잘 수는 없고, 참 난감하네... 할 수 없이 바닥에 이불깔고 자야지 어떡하겠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이불을 대충 깔고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 잠이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나는 목이 말라 눈을 떴다. 아직도 주위는 어두웠다. 정신을 차리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누운채로 손을 더듬어 시계를 찾아 시간을 확인했고, 그 결과 새벽 3시가 넘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순간 욕실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나는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들어올때는 몰랐다. 이 방의 욕실이 저런 시설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리벽인줄 알았던 벽이 마치 대형 스크린 처럼 욕실 안의 광경을 비추고 있지 않는가.
군대 있을 때, 즉 휴가다녀온 고참이 휴가 마지막 날 자신의 여친과 뜨겁게 섹스를 즐겼다는 사실을 야간 초소에서 자랑삼아 얘기할 때 고참을 통해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말을 믿지 않았고 고참이 자랑삼아 지어낸 얘기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바깥에서 자신의 샤워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선경이. 흥겨운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라의 육신에 비누 거품을 묻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나는듯 했다.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듯한 아름다운 육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온 몸에 비누 거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얼굴 아래로 가늘고 긴 목은 살짝만 건드려도 뚝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고 그 아래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젖가슴의 풍만함은 내 가슴을 떨게하기에 충분했다. 풍만한 젖가슴 끝 정점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는 새빨간 유두는 한 입에 베어 먹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비누 거품을 모두 칠했는지 선경은. 샤워기를 틀어 자신의 머리에서부터 물줄기를 분사시켰고, 그 물줄기는 아래로 흘러내리며 온 몸에 묻어있는 비누 거품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선경의 몸을 감싸고 있던 거품은 모두 제거되었고, 마침내 거품 속에 숨어있던 백옥같이 깨끗한 육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명등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나신은 너무도 투명한 유리같아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여지껏 그녀를 감싸고 있던 피부 조각인줄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육체는 흠잡을 곳 하나없이 완벽했다. 끊어질듯 가냘픈 세류요(細柳腰)는 풍만한 젖가슴과 둔부에 의해 그 굴곡이 너무도 돋보였고, 배꼽 아래에 펼쳐진 울창한 수풀은 음부 전체를 빼곡히 덮고 있었다. 그런 선경의 나신은 너무나 자극적이라 꺼져 있던 나의 욕구를 서서히 깨우기 시작했다.
'아! 너무 아름답다. 그녀를 가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런 욕구를 참았다.
그 순간 욕실문이 왈칵하고 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다시 눕혔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채지 몸하게 모든 몸짓을 멈춘채 자는척 하고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욕실에서 걸어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지 몸을 문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뚜벅 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내 앞에서 멈추었고 곧이어 방바닥에 앉는 소리가 났다. 그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서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화장대 앞에서 꿇어 앉아 있음인지. 희멀건 둔부가 나의 코앞에 있는게 아닌가. 한입 베어물고픈 충동에 온 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고 있었고, 혀를 내밀어 그곳을 핥아먹고 싶은 기분에 온 몸을 떨어야했다. 눈 앞에 펼쳐진 적나라한 모습에 자극 받은 자지는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 하느님... 부처님... 신이시어... 참자. 참아야 한다!!!"
방금 샤워마쳤음인지 샤워 비누 냄새와 희멀건 둔부의 살내음이 동시에 코를 자극했다. 마음 속으로 나는 신들을 찾았고 그들에게 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유혹을 이겨내려고 기도하고 있을 때 꿇어 앉았던 선경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내게서 멀어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떴고, 얇게 떠진 그 사이를 통해 욕실 쪽으로 걸어간 선경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선경은 욕실 쪽으로 뒤돌아선 채 여지껏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올을 흘려내렸고, 샤워한다고 벗어놓은 속옷을 다시 입고는 스위치를 눌러 방안의 불을 끄더니 속옷 바람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내 귀에는 침대의 출렁거림과 삐걱거림이 그대로 들려왔다.